[소설]아라리 난장 19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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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생색까지 낼 심산으로 가벼운 걸음걸이로 테이블을 찾아왔던 그녀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지고 말았다. 어색해진 것은 승희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호의에 불과한 것을 확대 해석하려는 태호의 긴장감 속에는 필경 자격지심같은 것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희는 태호와의 사이를 오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되련님. 호의를 액면대로 받아들이면 안돼요? 아가씨가 무안하잖아요. " "형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전 양해도 없었던 것이 무례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래요. 무례하다고 느끼진 않았어요. 오히려 신선했어요. "

바로 그때였다. 두 손으로 자신의 입 언저리를 감싸고 있던 송은주의 입에서 쿡하고 울음을 되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멸감을 삭이기 어려웠던 탓이었다. 그와 함께 안쪽 테이블에 앉아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두 여자들이 어느새 손수 의자를 챙겨들고 옮겨앉았다.

그리고 승희에게 말했다.

"얜 항상 이렇다니까요. 저 혼자서만 좋다고 생각하는 일을 저질러놓고 나선 창피를 뒤집어쓰곤 해요. 그러나 순수한 호의였다는 것만은 우리들이 보장할 수 있어요. 다른 꿍심이 있어서 그러는 애가 아니에요. " 테이블은 너무나 어색한 분위기였다.

승희는 경직되어 있는 태호의 기분이 풀어지기를 기다렸으나 지금 당장은 공연한 기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지나온 과거에서 탐지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앵벌이 조직에서 잔뼈가 굵어온 사람으로서의 넉살이나 염치도 기대할 수 없었다.

그에게 여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벌써부터 해왔었고, 이것이 바로 바라고 있었던 기회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에 태호의 태도가 더욱 미련스럽게 보였다. 승희는 그때까지도 요지부동인 태호에게 말했다.

"이제 이 분들과 합세까지 하였으니 제발 긴장 푸세요. 송은주씨 미안해요. 뜨내기 노점상이 긴장되었던가 봐요. 그런 호의를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입장이 바뀌었다면, 지금 되련님같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

"얘, 너 참 이상하다. 긴장되어서 과민반응을 보였다고 하잖니. 그만한 일로 질질 짜는 건 또 오늘 처음 봤다. 얘, 민숙아 은주 얘 좀 이상하지 않니?" "그래. 나도 그래. 얘 우는 거 첨 봤어. 얘, 너 체한 거 아니니?"

그때였다. 울음을 삼키고 있던 송은주가 갑자기 쿡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서둘러 눈가장자리의 눈물 자국을 손등으로 밀어냈다.

"얘 봐. 한 술 더 떠서 또 웃네? 너 왜 웃니?" "니 말에 뭐가 생각나서 그래. " "그게 뭔데?" "니 말이 흡사 너 똥쌌니 하는 것 같았어. " 그 순간, 세 여자의 입에서 약속이나 한듯이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얼마나 경쾌했던지 사람들을 따라 테이블 전체가 웃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예상컨대 그들은 시정에 떠돌고 있는 조크 한 토막을 떠올린 게 틀림없었다.

그 조크는 태호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따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저씨라고 부르기엔 어색해서 그런데요. 어떻게 부르면 돼요?" "태호라고 합니다. " "이름 촌스럽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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