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당비도 내지 않는 당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98년 상반기 정당 수입.지출내역에는 한국정당의 후진성과 거품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 있다.

여야를 합쳐 당원이 내는 당비가 정당수입의 겨우 3.1% (41억여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국고보조금과 후원회기부금은 각각 51.8%와 13.7%나 된다.

결국 당원들은 국민과 지원그룹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자기들 당살림을 꾸리고 있는 것이다.

각당이 주장하는 당원수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한나라 4백만, 자민련 1백20만, 국민회의 84만명…. 덩치도 덩치지만 각당은 버젓이 당비규정을 갖고 있다.

일반당원들은 매월 적어도 1천원씩을 당비로 내야 하는 것이다.

1천원씩만 내도 산술적으론 1년에 한나라당 4백80억, 자민련 1백44억, 국민회의 1백8억원을 모을 수 있다.

물론 이런 당원수는 선거목적 등으로 잔뜩 부풀려진 허수 (虛數) 다.

하지만 거품을 많이 걷어낸다 해도 당비는 매년 수백억원이 될 것이고 그만큼의 국가예산은 경제구난 (救難)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어느 개인이 정당에 들어가는 것은 정당의 이념과 지향점을 지지하고 그 당을 통해 대의 (代議)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한국의 상당수 당원들은 이런 원칙과 거리가 멀었다.

구 (舊) 여당의 당원들은 대부분 자신이 당을 떠받치기보단 선거운동비나 명절선물 같은 하찮은 반대급부에 길들여졌다.

구 (舊) 야당의 당원들도 '힘든 야당 한다' 는 명분에 취해 당비라는 실질적 의무를 등한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당원이 당비를 내야 하는 건 국민이 세금을 내는 것과 같다.

당비를 내야 당원이 정당이란 공동체에 대해 소속감을 느끼고, 이 연대감이야말로 정당 선진화의 든든한 밑천일 것이다.

당비는 정당민주화.정치개혁의 강력한 엔진이 된다.

당이 당비로 재정자립도를 강화하면 정권교체로 인한 재정환경의 악화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지구당이 당비로 운영된다면 정치 고 (高) 비용도 적잖이 해소될 것이다.

중앙당도 체질개선을 통해 당원의 당비납부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적은 액수라도 당원은 당비에 합당한 자신의 권리와 참여를 원한다.

'당비당원' 은 지구당위원장.각급 선거직 공천자를 뽑거나 지구당정책을 결정하는 것 같은 일에 좀 더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할 것이다.

지금처럼 권리는 없고 지구당행사나 합동연설회에 동원되는 의무만 있다면 그들은 당비를 낼 기분이 나지 않을 것이다.

당내 민주화가 절실한 또 하나의 이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