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 특파원 우루무치 르포] 밤거리는 한족이 장악 … 칼 들고 활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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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최대 도시 우루무치(烏魯木齊)는 낮과 밤이 두 얼굴이다. 5일(현지시간) 밤 유혈 시위 사태 이후 3일간의 집단 휴무가 끝나고 9일 정상 출근이 시작됐다. 밤에는 여전히 인적이 끊기고 공포감이 팽배해 있지만 낮에는 시내 중심가의 행인과 차량 통행이 급격히 늘고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8일 밤=완전히 한족의 천지였다. 한족들은 손에 식칼을 들고 야간에 거리를 활보했다. 이들은 “위구르족들은 닥치는 대로 죽이겠다”고 떠들었다. 한밤에 택시를 탔더니 기사 위(兪·50)는 신문지를 펼치면서 시퍼런 식칼을 내보였다. 그러면서 “우리 주변의 한족들이 5일 밤 희생됐다. 위구르족들이 무고한 부녀자와 노약자를 칼로 찌르고 돌로 내리쳤다. 이제는 내가 그들을 손봐줄 차례”라고 말했다. 그는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신장 자치구는 한족의 영토이기 때문에 위구르족들에게 절대 내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정 무렵 제팡(解放)거리에는 한족 남성들이 삼삼오오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도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30대 한족은 “위구르족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흥분했다. 그는 “위구르 남자들이 할 줄 아는 것은 마약과 절도·폭력밖에 없다”며 “정부 지도자들은 화합과 단결을 강조하지만 모두가 공허한 소리로 들린다”고 말했다. 이들 옆에는 방패를 든 무장경찰이 수십 명씩 순찰을 돌고 있었지만 칼을 든 한족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9일 낮=오전 9시쯤 인민광장 주변의 시내 한복판에는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한족 택시 기사 황(黃·40)은 “시내 중심가에 출근길을 서두르는 위구르족 여성들의 모습을 5일 이후 처음 본다”며 “폭력 시위를 벌였던 위구르족들이 대부분 검거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신장대학 캠퍼스에는 방학이 시작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학생들이 운집해 있었다. 쓰촨(四川)이 고향이라는 리(李·20)는 “빨리 고향에 가서 쉬고 싶다”고 말했다.

◆공포와 불신 팽배=인구 230만 명인 우루무치 시내는 요즘 ‘남북 분단’ 상황이 출현했다. 210만 명의 한족 중 대부분이 몰려 사는 시내 북쪽과 20만 명의 위구르족이 모여 사는 시내 남쪽의 교류가 거의 차단됐다. 이런 가운데 한족과 위구르족 사이에서는 서로를 비난하는 험담과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다. 양측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이 5일 밤 누가 총을 쐈느냐다. 위구르족들은 “경찰이 진압 과정에서 총을 난사한 증거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족들은 “이번 시위가 국내외 위구르족들에 의해 치밀하게 조직됐다”며 “위구르족 테러리스트들이 총기를 밀반입해 총을 난사했다”고 반박했다. 악몽 같은 유혈 사태가 지나갔지만 우루무치에는 또 다른 충돌에 대한 공포와 불신이 더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

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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