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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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4장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운다

무슨 연유로 태호가 자제력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

변씨는 마침 연석선을 따라 심어둔 가로수로 다가가서 버팀목 하나를 순식간에 뽑아 들었다.

그리고 엎어지듯 달려가 윤종갑의 엉덩이를 서너대 연거푸 내려쳤다.

불시에 매서운 가격을 당한 윤가는 철규를 싸잡은 채 앞으로 꼬꾸라지고 말았다.

"아이구, 이놈이 사람 잡네. " 나동그라지면서 윤종갑이가 내지른 신음소리였다.

그 사품에 같이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져 윤씨 밑에 깔려 바둥거리던 철규는 간신히 몸을 빼내었다.

그리고 다시 윤씨를 향해 각목을 내려치려는 변씨의 손목을 낚아채며 늘어졌다.

"그만하십시오. 그러다 사람 잡겠습니다. " "말리지 마. 기왕 시작해 놓은 일 한선생이 못하면 나라도 마무릴해야지. " 그때까지 미동도 않고 있던 태호까지 합세했기 때문에 들고 있던 각목을 빼앗기고 말았다.

세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윤씨는 가까스로 상반신을 추스르고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나 죽겠다는 엄살은 여전했다.

"이놈의 자식. 거기 가만 앉아 있어. 줄행랑을 놓았다간 등줄기에 칼이 꽂힐게야. " 철규와 태호에겐 말로 다스리겠다는 약조를 굳게하고 땅바닥을 설설 기며 엄살 떨고 있는 윤종갑에게 다가갔다.

순간적이긴 하였으나 옛날 서울생활 때, 건설현장에서 청부깡패 노릇 하던 시절의 기억이 뇌리를 스치고 지났다.

자신의 그런 과거가 생각나는 순간, 변씨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윤씨의 따귀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자 윤씨는 변씨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며 사람살리라는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그 외마디 소리는 오히려 변씨에게 짜릿한 폭력성을 충동질할 뿐이었다.

"암코양이 같은 놈. 적반하장도 분수나름이지. 니가 감히 한선생을 손찌검해? 천지개벽이 되어 세상이 왼통 사기꾼과 도둑놈들 범벅이 되었다 하더라도 니가 한선생한테 대들 순 없어. 이게 올곧은 정신 가진 놈이여? 엄살 피지 말고 냉큼 일어나 이 생쥐같은 놈아. 엄살 피면 단매에 박살내고 말거야. 내 성질 지랄인 거 알지?"

엄살이 아니라 정말 일어날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건 고사하고 잔허리를 버티고 일어날 근력이 없었다.

뱃구레에 큰 구멍이 뚫린 기분이었다.

태호의 곁부축을 받으며 가까스로 일어나 연석선을 깔고 앉았다.

지나간 몇분 동안의 일이 뒤죽박죽이 되어 뇌리를 스쳐갔으나 상황이 어떻게 반전이 되어 한때나마 한철규에게 속시원하게 앙갚음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자식아, 입에 곡기를 처넣는다고 다 사람인줄 알아? 너 같은 개자식을 먹여살리려고 오뉴월에 뙤약볕에서 논빼미 허우적거리며 김매주는 사람이 있어야 돼? 제 아무리 푼수를 모른다 할지라도 나이를 처먹었다는 놈이 제 흉허물도 모르고 날뛰다니? 이런 배은망덕한 놈은 입씨름할 가치도 없어. 마침 호젓한 곳이니 허리에 돌 달아서 쥐도 새도 모르게 바닷속에 처박아버릴까?"

"제발 날 좀 살려주게. " "쥐새끼 같은 놈, 우리 행중을 함정에 빠뜨리고 니만 살고 싶다는 수작이야? 니만 살고 우린 어떻게 할까? 네 놈이 다 파먹은 김칫독에 대가리 처박고 애국가나 부르고 있을까? 우리가 미련해서 네놈이 기백만원을 날탕으로 삼키는데도 끽소리 없이 보고만 있었지만, 죽기살기를 겨룬다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걸?" "기백만원이라니. 돈 백 될까 말깐데. "

"이 자식 봐라? 이 자식이 주둥이 가졌다고 대중없이 나불거리고 있네? 그럼 돈 천만원 빼 처먹어야 뱃때지가 불렀겠네? 돈 백쯤은 돈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는 얘기겠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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