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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퇴출·합병 소용돌이속 몸부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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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5개 은행의 퇴출에 이은 상업.한일은행의 합병으로 은행권이 빅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저마다 합병 등 몸 불리기로 리딩뱅크 대열에 합류하느냐, 특화된 영역에서 독자 생존하느냐 등 향후 전략에 대한 검토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이달말께는 은행권 재편 구도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빨라지는 상업.한일은행 합병 = 당초 6~8개월로 잡았던 합병일정을 1백일 안팎으로 대폭 단축할 계획이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금융산업구조개선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합병절차가 간소화되는데다 두 은행은 이미 지난 4~6월 사이 회계법인으로부터 자산실사를 받아 놓아 일정 단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두 은행은 합병실무추진위원회를 3일중 구성, 첫 회의를 열 계획이다. 문제는 중복 점포와 인력 정리작업인데 금융감독위원회가 이미 40%이상의 감원이 없이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어 고심중이다.

◇가시화되는 은행 3중 구조 = 가장 마음이 급해진 곳은 조흥.외환은행이다.

조흥은행은 지난주 말 보람은행과 임원급 접촉을 갖고 합병 의사를 타진했지만 보람측이 하나은행과의 합병에 미련을 갖고 있어 본격 협상단계로까지 진전되지는 않은 상태다.

외환은행은 한외종금과 합병할 예정이지만 금감위가 이를 자회사 정리차원으로밖에 인정치 않아 고심중이다.

내심으론 한미은행과 합병을 원하고 있지만 한미의 대주주인 미국 뱅크 오브 아메리카 (BOA) 와 외환측 주주인 독일 코메르츠 은행간 관계가 변수다.

지난 6월말 동화은행을 떠안은 신한은행도 조흥.외환은행과 비슷한 처지다.

그러나 신한은행은 마땅한 합병 파트너를 찾지 못해 국제입찰에 부쳐질 제일.서울은행중 한 곳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하나.한미은행은 향후 진로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자면 2개 이상의 은행과 합쳐야 상업.한일은행과 비슷한 규모가 되고 독자생존을 하자니 영업범위가 너무 좁아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당초 보람은행과의 합병을 추진했으나 지난 6월말 갑자기 충청은행을 인수하게 된데다 조흥은행이 보람과의 합병에 끼어드는 바람에 고민중이다.

하나은행은 이 때문에 이번 주중 보람은행과 합병문제를 결론짓는 한편

장기신용은행과 합병을 조심스럽게 검토한다는 복안이다. 한미은행은 경기은행을 인수, 일단 수도권지역에서 경쟁력을 얻게 된 만큼 지역특화은행으로 살아남는 방안을 검토중이나 후발 시중은행과의 합병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합병구도의 가장 큰 변수는 국민.주택은행이다. 이들 은행은 자산규모로는 조흥.외환은행과 맞먹지만 기업대출 경험이 적어 독자적으론 리딩뱅크가 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이들 은행의 진로는 정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에 향후 행보가 관심거리다.

나머지는 지방은행들이다. 일부는 대형 시중은행에 합병되고 남는 곳은 소규모 지역특화은행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은행간 이합집산 (離合集散) 이 마무리되면 국내 은행계는 3~4개 리딩뱅크와 소규모 지역은행 및 중간에 위치한 우량 중견은행 등 3중 구조로 재편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금감위의 입장 = 상업.한일은행의 합병 성사로 일단 은행들이 합병에 나서지 않고는 못배기는 상황이 된 만큼 앞으로는 한발 물러서 시장 상황을 지켜본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금감위가 합병은행에 대한 지원에 인색할 경우 나머지 은행들이 합병으로 인한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판단, 독자생존 쪽으로 방향을 돌릴 가능성도 있어 수위조절에 고심하고 있다.

남윤호.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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