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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신학생 교류 시작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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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국 개신교계와 중국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신학 교육 및 신학생 교류’에 합의했다. 1~3일, 사흘에 걸쳐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기독교 포럼’에서 거둔 성과다. 이 포럼에서 중국 국가종교사무국은 “중국 내 기독교 신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반해 목회자 수는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한국 개신교계와 신학대 교육 및 신학생 교류를 희망한다”고 제안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 측에서 ‘신학생 교류’를 제의한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다.

3일 중국 베이징 국가종교사무국의 차관급인 장젠융 부국장(左)이 한국기독교대표단측 박종순(충신교회 담임) 목사(中)와 오정현(사랑의교회 담임) 목사에게 족자를 선물로 전달하고 있다. 장 부국장은 ‘만자천홍(萬紫千紅·울긋불긋한 꽃 빛깔)’ 글귀를 가리키며 “중·한 기독교 교류가 봄날의 꽃처럼 활짝 피길 바란다”고 말했다. [베이징=백성호 기자]

한국기독교대표단 단장을 맡은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 담임)는 “지금은 국제화 시대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가 중국 교회에 새로운 콘텐트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로써 중국 정부 차원의 공식 창구를 통한 한-중 개신교계 교류의 서막이 올랐다.

◆중국의 종교 현황=중국 정부는 5대 종교만 인정한다. 불교, 개신교, 가톨릭, 도교, 이슬람교다. 그외 종교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다만 유교는 종교가 아닌 생활철학으로 적극 수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에게 ‘종교’는 다소 껄끄러운 존재다. 중국 역사에는 숱한 민란이 있었다. 후한 말기 황건적의 난, 원나라 말기 홍건적의 난, 명·청 교체기 백련교도의 난,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의 난 등의 배경에는 어김없이 종교적 배경이 깔려 있었다. 56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지향한다. 중국은 ‘공산당’과 ‘하나의 중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 종교를 인정하고 있다.

◆크게 부족한 목회자=중국 전역의 신학원(신학대) 수는 18개다. 목사 수는 약 4800명이다. 반면 중국내 개신교 신자 수는 1600만 명에 달한다. 국가종교사무국 장젠융(蔣堅永) 부국장(차관급)은 “실질적인 개신교 신자 수는 2000만 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5대 종교 중 신자 수가 가장 급증하고 있는 종교가 개신교”라고 설명했다.

증가하는 신자 수에 비해 목회자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1952년에 건립된 난징의 금륭협화신학원은 중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신학대이다. 이곳에선 지금껏 1100명이 넘는 목회자를 양성했다. 지금도 180명의 신학생이 재학 중이다. 그러나 난징 시내의 주말 예배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다. 난징의 교회 수는 10여 개, 예배를 보는 집회 장소는 100곳이 넘지만 난징시의 목사 수는 10명 정도에 불과하다.

◆한·중 기독교 포럼=“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중국 정부와 중국 교회의 관계는 이 말로 요약된다.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 중국 교회는 철저하게 정부의 정책을 따른다. 중국에서 선교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사회주의 중국은 “믿는 자의 권리만큼 믿지 않는 자의 권리도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외국인 선교사에 의한 ‘물밑 선교’는 중국 정부의 큰 고민거리다.

2일 베이징대학의 강당에서 열린 ‘중·한 기독교 포럼’에서도 중국 측 사회과학원 학자와 교수들은 ‘조화’를 강조했다. 중국 측 학자들은 “한국의 기독교는 근대화와 민주화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중국의 기독교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함께 들어왔다. ‘기독교’하면 중국인들은 아편전쟁을 떠올린다. 중국과 한국의 기독교는 역사적 맥락이 다르다. 사회 체제도 다르다. 이에 대한 정부 정책도 다를 수밖에 없다”며 “기독교 선교가 중국 정부의 정책과 조화를 이루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기독교 측 발제자로 나선 함태경(베이징대 정치학 박사) ‘차이나네트워크’ 연구소장은 “쑨원(孫文)은 기독교의 평등과 박애 사상을 바탕으로 ‘반봉건 사상’을 구축했다. 그의 삼민주의(민족·민권·민생)도 기독교적인 배경에서 나왔다”며 “국민의 마음을 모으는데 종교적 심성과 전방위적인 적용·실천은 얼마든지 유용하다. 중국 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가 역사적 사명과 책무를 수행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역설했다.

◆한·중 기독교 교류=3일 오전에는 베이징 시내의 국가종교사무국에서 만남이 이어졌다. 장젠융 부국장은 민감한 사항인 ‘중국 내 한국인 선교사와 가정교회(지하교회)’ 문제도 직접 거론했다. 장 부국장은 “예전에는 중국 내 한국인 선교사가 5000명이라고 집계됐다. 지금은 2배 이상 늘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의 선교 열정이 높아서 중국에선 조금 지나친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오정현 목사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관계는 크게 발전했다. 이제 한국 기독교와 중국 기독교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할 시점이라고 본다”고 공감을 나타냈다. 오 목사는 “기독교는 복음에 근거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오늘 이렇게 뿌려진 씨가 놀라운 열매를 거두어서 한·중 교류에 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베이징=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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