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 구조조정은 자율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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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와 재계가 5대 대기업그룹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기업구조조정이 경제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그동안 논란이 있었던 사업교환 (빅딜) 을 적극 추진키로 하고 고용조정은 가급적 자제하기로 합의했다.

이같은 합의는 보기에 따라서는 심도 있게 추진중인 금융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나 개혁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이제 기업구조조정이 절실하다는 상황인식에서 정부가 기업의 등을 떼미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부문과는 달리 정부가 아무리 개입을 하려 해도 별 효과가 없음이 그동안의 기업개혁에서 나타난만큼 이번만은 대기업이 자율적으로 변신하는 계기라고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스스로가 효율화에 신경쓰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간담회가 일과성 혹은 시간벌기로 끝나 다시 한번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합의정신을 살려 새로운 한국 기업의 모습을 보이도록 신속하게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기업구조개혁과 관련된 합의사항은 이미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 5대기업 총수들이 만난 자리에서 합의했던 5개 사항을 시간테이블을 정해 실천에 옮긴다고 강조하는 것이라 새롭지는 않다.

다만 이번에 구체적으로 과도한 부채구조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경쟁력이 낮은 사업부문에 대해 사업교환을 포함한 구조조정방안을 재계가 자율적으로 마련하고 정부가 그 추진을 뒷받침한다는 합의는 주목할 만하다.

이는 바로 빅딜을 자율적으로 재계가 추진한다는 원칙을 재천명한 것인데 문제는 언제 실천에 옮겨질 것인가다.

이는 정부의 지원조치의 내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예를 들어 세제 혹은 금융상의 정부조치가 포함될 것이다.

일의 순서로 보아 재계가 협상을 구체화하는 동안 정부가 빅딜을 촉진하기 위한 법과 규정의 정비를 해서 먼저 발표해야 한다고 본다.

노사관계 및 실업대책과 관련된 합의문안을 보면 합법적인 고용조정은 존중하되 개별적인 기업의 사정에 따라 노사협의를 통해 임금이나 근로시간변경 등이 가능한 경우에 재계는 고용조정을 최소화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이번 합의가 모든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고용조정을 자제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기업에 따라서는 임금이나 근로시간 조정만으로는 합리화가 불충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합의는 정부와 재계가 가급적 노사정위원회를 좌초시키지 않으려는 배려로 보인다.

노조도 이같은 배경을 이해하고 이제는 생산성 향상만이 일자리 지키기의 첩경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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