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쉼터 정자]2.괴산 고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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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충북 괴산은 중국의 촉 (蜀) 나라 만큼이나 험한 곳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지금은 중부고속도로와 연결되고 영남으로 통하는 내륙교통의 길목에 위치, 교통의 요지로 바뀌었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2시간 이내면 닿는다. 또한 근처에는 수안보 온천장, 월악산과 속리산국립공원이 있어 충북 관광의 1번지로 꼽힌다.

일찍이 괴산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사람이 조선조 선조때 명신 서경 (西坰) 유근 (柳根 : 1549~1627) 이다.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한 서경은 이곳 제월리 고산 (孤山)에 정자를 지었다 (1596년) .지금도 남아있는 소나무 숲이 말해주듯 당시에는 원시림에 가까운 아름드리 소나무들로 가득했다.

그는 정자 이름을 만송정 (萬松亭) 이라 불렀다.

뒷날 광해군의 난정 (亂政) 을 피해 이곳에 고산정사를 지어 만년을 보내면서 정자 이름도 고산정 (孤山亭) 으로 바뀌었다.

정면, 측면 모두 2간의 팔작지붕인 고산정은 내부에 명나라 사신 주지번의 '호산승집 (湖山勝集)' 이란 현판과 역시 명나라 사신 웅화의 '고산정사기' 가 걸려 있다.

고산정이 국내외로 명성을 얻은 것은 서경이 주지번을 영접하면서 고산의 아름다움을 자랑한 데서 비롯됐다. 임진왜란 후 명나라 사신으로 조선에 온 주지번은 중국의 명승지를 글로 자랑했다.

이에 뒤질세라 서경도 시문 (詩文) 으로 고산의 만송정을 포함한 9경 (九景) 을 펼쳐 보였다.

그의 글에 탄복한 주지번은 한양에 도착한 뒤, 고산을 꼭 방문하겠다 고집했다. 그러나 전쟁 후 외국사신을 수행하는 어려움과 민폐를 걱정해 서경은 화공을 보내 그림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서경의 시와 그림이 일치함을 본 주지번은 '제월대 (霽月臺)' '은병 (隱屛)' '호산승집' 이란 글귀를 서경에게 선물했다.

오늘날 고산정과 그 주변에는 주지번의 이 휘호들이 남아 있어 옛 일을 증언한다. 고산정 아래로는 달천의 상류인 괴강 (槐江) 이 흐른다.

속리산 북쪽 골짜기의 물을 아우르는 괴강은 고산정 밑에서 암벽을 만나 잠시 숨을 고른다.

그때 바위 (觀魚臺라 부름)에 앉아 눌치들이 노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9경의 하나다. 또 정자의 동편 솔밭을 지나면 제월대를 만난다.

구름 한점 끼지 않은 맑은 달이 강물에 비친다.

서너 사람 앉을 수 있는 바위 한쪽 구석에 '제월대' 란 휘호가 수줍은 듯 숨어 있다. 서경의 풀 한포기 바위 한 귀퉁이라도 다칠세라 염려한 자연에의 사랑이 돋보이는 휘호 자리다.

고산정은 충북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돼 군청에서 보호, 관리한다.

아쉽게도 사방 철책으로 보호막을 치고 있어 쇠창살 안에 갇힌 모습이다.

정자의 본래 기능은 사라지고 정자 자체를 감상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문화수준에 얼굴이 붉어진다.

괴산 = 최영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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