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배상판결 난 은행 부실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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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일은행의 이철수 (李喆洙) 전 (前) 행장 등 전직 임원 4명이 부실경영과 부실대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은행에 4백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1심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 재판은 제일은행의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것이었다.

이번 판결은 회사 임원에게 부실경영으로 말미암아 회사가 입은 손해, 종국적으로 주주가 입는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우리나라의 경우 첫번째 판결이다.

특히 李전행장이 재임중 업무와 관련해 범한 수뢰혐의에 대해 형사 유죄판결을 받은 것도 이번 손해배상 판결의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판례는 앞으로 회사 임직원의 부실경영 책임, 특히 회사와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불법적 행위와 관련된 부실경영에 대한 배상책임을 피할 수 없도록 하는 이정표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두가지 유형의 경영자에 의한 배타적 전횡 (專橫) 이 부실경영을 안전판도 없는 악순환으로 몰아 왔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하나는 민간기업의 이른바 '오너 (대주주) 경영권' 이고 다른 하나는 공공적 사업체의 '주인없는 경영권' 이다. 은행은 후자에 속한다.

여신심사 등 본래의 은행경영기술 대신 담보대출 관행과 '권력형 대출' 이 영업의 주된 관행을 이뤄 왔다.

특히 권력형 지시대출은 부패와 부실을 동시에 대량생산했다.

오늘날 은행의 경영부실은 주로 여기서 초래됐다.

국민회의가 기업투명성 제고를 위해 상장기업의 결합재무제표 작성의무와 증권관련 집단소송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한다.

일반 기업도 제외돼선 안되겠으나 특히 경제거래에서 전방효과가 막대한 은행에 대해서는 공시자료의 투명성이 글로벌 표준에 따라 한층 더 강화돼야 할 것이다.

마침 6대 시중은행의 상반기 적자가 5조5천억원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은행경영의 이런 대규모 부실의 결과로 시중에는 심각하기 짝이 없는 '대출경색' 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출이 38년만에 처음으로 감소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그 가장 큰 원인이 수출금융의 경색에 있다고 한다.

수출뿐만 아니라 전산업에 걸친 운영자금 대출경색이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빚고 있다. 은행을 바로 세우는 것은 전체적 구조개혁의 핵심이자 영 (零) 순위 대책이다.

기왕 잠식된 자본은 새 것으로 보충하고, 세계 표준적 경영기술을 도입하고, 주인을 모셔들이고, 감독책임을 강화하는 것 외에 주주와 예금자에 대한 경영정보의 투명성을 확립해야 한다.

이것이 은행개혁의 내용이 돼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차 부실경영 배상책임 소송은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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