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구조조정 핵심은 기업 재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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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우리 생활주변에서 가장 빈번히 접하게 되는 용어로 '구조조정' 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구조조정의 핵심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첫째, 구조조정이란 용어는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들을 위해 특정 프로젝트 지원을 위한 프로젝트 차관과는 별도로 구조조정차관 (structural adjustment loan:SAL) 을 도입하면서 경제전문가들 사이에는 널리 사용된 지 오래됐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구조조정은 개발도상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는 데 필요한 상당히 광의의 개념으로 정보를 포함하는 공공부문.금융부문.산업 및 기업부문.노동시장 등 각 분야에 걸친 제도개선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가 받고 있는 국제통화기금 (IMF) 긴급구제금융 중에는 이러한 제도개선 지원에 쓸 수 있는 세계은행의 구조조정차관이 포함돼 있다.

어쨌든 이러한 광의의 개념인 구조조정은 IMF 긴급구제금융 조건으로도 제시되고 있다.

물론 그 속도와 방법에 관해서는 이견 (異見) 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필요성에 관한 한 큰 이견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차제에 정부는 이러한 구조조정 시책을 강력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둘째, 좀더 협의의 구조조정 개념도 있다.

그것은 특히 80년대 미국의 대기업들이 경쟁력 제고를 위해 도입한 각종 경영혁신을 통한 '기업재편 (business restructuring)' 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기업 구조조정이다.

이 기업 재편은 경쟁기업과의 전략적 제휴와 합병, 그리고 전문화를 위한 주력업종 이외의 비주력업종 기업 내지 사업의 정리 등을 통해 이룩된다.

그러나 이 기업재편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대폭적인 인력감축, 혹은 규모 줄이기 (downsizing) 다.

미국에서는 지난 80년대 이래 현재까지 4천4백만개에 달하는 일자리가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미국에서는 같은 기간에 7천3백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돼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2천9백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벤처기업을 포함하는 중소기업이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나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노동시장이 경직적인 유럽연합의 경우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91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은 1천4백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해낸 반면 유럽연합은 5백만개의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구조조정이란 용어는 바로 이러한 기업재편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물론 금융기관 구조조정도 금융기관 재편이란 측면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과다차입에 의한 업종 다변화와 과잉.중복 투자가 우리 대기업그룹의 문제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기업의 재편도 대폭적인 인력감축과 많은 비주력업종기업 처리를 주내용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우선 대량실업에 따르는 사회적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에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실업자 지원과 대출 및 고용보험 대상은 가능한 한 늘려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재정적자폭을 늘리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것은 성공적인 기업재편을 위해 필요한 것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IMF와 세계은행도 적절한 수준의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재정적자폭의 확대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 보통이다.

또한 대기업그룹들의 비주력업종 기업 처리를 원활히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강화돼야 할 것이다.

소위 '빅딜' 로 통용되고 있는 기업교환 (business swap) 은 어디까지나 기업 자신의 계산에 의해 추진돼야 할 것임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단지 정부는 이러한 기업교환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경제구조조정 특별법 (가칭) 을 제정해 한시적으로 운영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꼭 강조돼야 할 것은 우리의 대기업그룹이 스스로 기업교환이든 다른 방법을 활용하든 간에 업종 전문화 방향으로 그룹을 재편할 각오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끝으로 은행을 포함하는 우리 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과 관련해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은 상대적으로 건실한 국내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무리하게 다른 부실 금융기관을 인수.합병하게 하는 시책은 금융부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사공일(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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