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기 왕위전]이창호 9단 - 조훈현 9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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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도전5번기 개막

제1보 (1~20) =조훈현9단은 유창혁9단을 꺾고 7전7승으로 도전권을 거머쥐었다. 목진석4단은 막판에 서봉수9단을 이겨 6승1패를 기록했으나 劉9단의 패배로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7월1일. 睦4단의 그림자를 뒤로 한 채 한국기원에서 도전기의 막이 올랐다.

왕위 이창호9단은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 차림. 曺9단은 애용하는 흰색 개량 한복. 규정에 따라 李9단이 상석에 앉았고 오전 10시가 되자 입회인 김인9단의 선언으로 제1국이 시작됐다.

김인9단의 시대를 曺9단이 이어받았고 曺9단은 서봉수라는 도전자와 끝없는 대결을 펼쳤다.

이제 이창호의 시대에 曺9단이 연이어 도전하고 있으니 스승이 자신이 옥좌를 물려준 제자와 계속 쟁투하는 일도 고금에 드문 일일 것이다.

"장마가 시작됐나. " 흑9를 놓은 뒤 曺9단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창밖을 본다.

李9단은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미동조차 없다.

올해 23세. 천기 (天機) 와 닿았다던 이 불가사의한 천재소년도 어느덧 늠름한 청년이 됐다. 비오는 날은 바둑도 차분해진다.

그러나 지금의 정석은 두 사람이 좋아하는 단골 메뉴라서 수순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12는 李9단이 좋아해 바둑계에 대유행을 몰고온 수이고 13은 曺9단이 실전에 처음으로 사용한 신수다. 이리하여 19까지 일단락인데 曺9단은 실리가 기분좋은듯 흑으로만 이 정석을 두고 李왕위는 두터움이 맘에 드는 듯 백으로만 이 정석을 둔다.

검토실에 가보니 서봉수9단이 일찍부터 나타나 김인9단과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다. 잠시 후 유창혁9단이 등장하자 4인방과 김인9단까지 현대 바둑사의 주인공들이 모두 모였다.

충암출신들과 소년기사들은 멀리 설악산으로 연수를 떠나 한국기원은 적막한데 바둑을 평하는 서봉수9단의 높은 목소리가 카랑카랑 울리고 있었다.

박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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