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30년산이 경매에 올라온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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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GS칼텍스 사내통신망에 고급양주인 발렌타인 30년산 700mL(주류전문점 가격 40~50만원) 2병을 각각 30만원에 판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공식적인 사내공문이었다. 의아하게 생각한 이 회사 임직원들의 문의가 해당 팀에 빗발쳤다. 경매를 담당했던 제도개선팀 권희정 대리는 “자초지정을 설명하느라 다른 업무를 못 볼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내막을 이랬다. 모 거래처에서 한 직원에게 수년째 업무와 관련해 도움을 주고받은 감사의 인사로 고급양주를 보내왔다. 너무 고가인데다 ‘선물ㆍ금품을 받지 말라’는 회사 윤리규범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그는 고심을 거듭했다. 곧 윤리경영관련부서인 제도개선팀에 “고가의 선물을 받았는데 그냥 돌려주는 게 나은지 어떤지 판단이 안 선다”는 문의를 했다. 감사의 인사로 보내와서 돌려줄 경우 상대방이 성의를 무시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자신의 의견도 냈다. 제도개선팀은 이 직원의 의견을 존중해 술을 사내에서 팔아 판매금 전액을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경매로 올린 수익 60만원은 사회공헌팀을 통해 전남 여수 지역 사회복지단체에 전해졌다.

지난달 중순 GS칼텍스 제도개선팀 인터넷 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은 항의의 글이 올라왔다. “지난 토요일 GS칼텍스 담당자의 부친 칠순 잔치가 있었는데, 경조금을 얼마나 할까 고민하다 평소 형ㆍ동생하는 사이라서 금 한 돈값 정도인20만원을 냈죠. 그런데 며칠있다 윤리규정에 위반된다며 20만원을 전부 다시 돌려주더군요. 이렇게까지 하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요.” 이 회사 자율준수사무국은 “특별한 사이라 하더라도 20만원은 사회통념상 과도하다 판단돼 윤리규범에 따라 돌려줬을 것”이라는 답장을 했다. “무엇보다 거래가 있는 이해당사자 간 경조금은 일종의 불필요한 거래비용”이라는 문구까지 넣었다.

GS칼텍스가 부쩍 윤리경영을 강조하며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이 회사는 최고경영자(CEO)부터 신입사원까지 모든 임직원의 명함에 윤리경영제보라인을 기록하고 있다. 전화번호와 e-메일을 기록해 언제든지 연락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 회사 제도개선팀의 허경무 팀장은 “윤리경영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회사의 강력한 실천의지를 반영한 단면”이라고 설명했다.

GS칼텍스는 ‘알쏭달쏭 GS칼텍스와 함께하는 윤리경영’이라는 책도 냈다. 이 회사 자율준수사무국에서 협력사나 일반 고객을 만날 때 겪을 수 있는 30가지 상황을 뽑았다. 허동수 회장은 “고장난명(孤掌難鳴 : 한 손으로는 손뼉을 칠 수 없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윤리경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GS칼텍스 임직원 뿐만 아니라 고객사ㆍ협력사 모두가 윤리경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병주 기자 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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