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살리자” 무료 임대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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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남구 대명동 남부시장에서 두부가게 주인 안경희(47·右)씨가 주민들과 우뭇가사리 묵을 만들고 있다. 안씨는 한달 전 빈 점포에 무료로 가게를 열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달 29일 오후 대구시 남구 대명동 남부시장. 시장 골목 안은 공사장을 방불케 했다. 점포 내부를 뜯어내고 개보수하는 작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한 점포에서는 콘크리트 벽면을 합판으로 덮는 작업이 한창이다. 레스토랑의 외관처럼 고급스러워 보인다. 시장 가운데 골목의 6개 점포가 수리작업 중이다. 셔터가 내려진 점포에도 안내 글이 붙어 있다. ‘식당 4칸 예정지’ ‘분식 예정지’ 등등.

“이 점포에는 칼국숫집이, 저쪽에는 과일집이 들어올 예정입니다. 가게들이 문을 열면 시장 골목에도 생기가 돌겠지요.”

시장을 소개하는 박동석(68) 남부시장 상인회장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남부시장 상인들이 시장 살리기에 나섰다. 시장 골목에 비가림시설과 하수도 등을 새로 설치하고 빈 점포의 문을 열어 손님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주도하는 사람은 박 회장이다. 군무원 출신인 그는 9년 전부터 상인회장을 맡고 있다.

“전체 145개 점포 중에서 50개만 남았어요. 나머지는 폐가처럼 변해 밤에는 귀신이 나올까 무서울 정도였지요.”

박 회장은 주민과 머리를 맞댄 끝에 시장 중앙통의 빈 점포 중 45개를 무료로 임대하기로 했다.

조건은 점포(16.5㎡·약 5평)를 1년간은 무료로, 나머지 1년은 관리비 명목으로 월 5만원을 내는 것이었다. 점포의 월 임대료는 15만원 정도라고 한다. 무료 임대사업이 입소문을 타면서 희망자가 줄을 이었다. 6월 한 달간 입주를 희망한 사람은 100여 명에 이른다. 상인회는 영업계획 등을 검토해 43명을 선정했다. 두부가게·국밥집·의류점 등 6개 점포는 최근 입점해 영업을 하고 있다. 나머지는 점포를 수리하고 있다. 의류가게를 연 신호성(45)씨는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꼭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려움도 있었다. 임대할 점포의 주인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45개 점포는 서울·부산 등지에 사는 34명이 소유하고 있다. 박 회장은 점포주들에게 안내문을 보내고 수차례 전화를 했다. 그러나 개발 가능성을 들어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박 회장은 “시장이 살아나면 점포의 가치도 높아진다”며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허락을 받았다.

남구청도 상인회에 힘을 보탰다. 시장 중앙 골목길 145m에 비가림막을 설치하고 콘크리트 포장도 해 주었다. 시장 입구에는 한국어·영어·일어·중국어로 된 아치형의 간판도 세웠다. 시장 입구에 승용차 10대를 댈 수 있는 주차장 조성공사도 하고 있다.

박 회장은 “다음달 초 남부시장의 새 출발을 알리는 축제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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