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전향 장기수·공안사범 '준법서약서'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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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정부가 사상 전향 (轉向) 제도를 폐지하고 공안사범들이 준법서약서만 제출하면 사면.가석방 등을 시켜주기로 했으나 상당수 미전향 장기수.국가보안법 위반사범들이 준법서약서 제출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오는 8.15 광복절 때 공안사범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실시키로 한 정부계획에 차질이 예상된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부산교도소에 수감중인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은 최근 '옥중 투쟁위원회' 명의로 '정부의 준법서약서 요구에 응할 수 없다' 는 취지의 광고를 일부 신문에 게재, 준법서약서 제출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 41년째 수감중인 우용각 (69.대전교도소) 씨를 비롯, 미전향 장기수 17명도 가족 등에게 준법서약서를 작성하지 않을 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일본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수감중인 조상록 (53) 씨의 경우 지난 1일 준법서약제 도입방침 발표 후 열흘동안 안동교도소에서 항의 단식농성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사노맹 (社勞盟) 사건으로 수감중인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 백태웅 (白泰雄.36) 씨와 85년 구미유학생 사건 연루자 강용주 (36) 씨 등이 최근 변호인.가족 등을 통해 반대의사를 밝혔다.

이들 공안사범은 "일반 형사범은 서약서를 받지않고 사면시켜주면서도 국가보안법 위반자 등 공안사범에 대해서만 요구하는 준법서약서는 사상전향 제도와 다를 게 없다" 고 주장하고 있다고 이들의 가족과 민가협 (民家協)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준법서약서는 과거의 죄를 반성한다는 의미도, 이념.사상을 포기한다는 뜻도 아니며 다만 헌법과 법률을 지키겠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며 "이마저도 거부한다면 결코 사면대상에 포함시킬 수 없다" 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일부 공안사범들이 준법서약서 거부의사를 보이고 있지만 전향제 폐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말했다.

법무부는 이번주중 준법서약서 문안작성 등 준비작업을 마치고 재소자 면담 등을 거쳐 본격적인 특별사면 대상자 선정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예영준.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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