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빠진 호랑이' 선관위…물리적 제재 불가능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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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혼탁한 선거판에서 공정한 선거활동을 계도하고 관리해야 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사실상 역할은 '이빨 없는 호랑이' 에 불과하다.

17일 광명을 합동유세장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선관위의 위상을 새삼 짐작하고도 남게 했다.

오전 11시 시작될 유세에 앞서 국민회의와 한나라당 후보가 입장하는 순간 양당의 국회의원.운동원들이 좀 더 좋은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시비를 벌이다 한데 엉켜 밀고 밀리는 촌극을 빚었다.

욕설과 고함, 심지어는 육박전 일보 직전까지 가는 과정에서 선관위는 싸움을 제지하려다 한나라당 운동원으로부터 멱살을 잡히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듣고서는 방관자로 물러나고 말았다.

결국 양당 국회의원들의 주도로 가까스로 질서는 잡혔지만 어쨌든 선관위 직원들은 궁색한 입장에 빠지고 말았다.

선거운동 시작부터 각종 불법 선거운동을 제지하기 위해 50명이 활동중인 광명을 선관위는 계속 수난의 연속이다.

16일 '거리 대담' 형식의 양측 후보 활동과정에서도 선거법에 명시된 각종 규정을 확인하고 시정하느라 진땀을 뺐다.

오후 8시30분 이후 벌어진 양당 후보의 거리 대담에서 나붙은 불법 현수막을 하나도 철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현장에서 대중연설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는 국회의원들의 연설을 제지하려다 모욕적인 발언을 듣고 말았다.

경기도 선관위 사무국장도 국민회의 조세형 후보의 거리 대담 현장에 나와 감시를 하다가 이 당 소속 운동원으로부터 신분증 제시를 요구당하는 등 수모를 겪었다.

광명을 선관위 단속반의 한 직원은 "저번 선거에선 두들겨 맞기도 했다.

모욕당하고 욕을 듣는 것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을 지경이다" 고 말했다.

선관위측은 선거현장에서 물리적 제재가 불가능한 점과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먼저 나서 탈법을 부추기는 현실이 실질적인 탈.불법 선거활동 감시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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