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정치는 NO’라는 다섯 가지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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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호 34면

6년 전 이 무렵이다. 그때도 그는 손수 차를 몰고 있었다. 봉하마을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우러 스포렉스를 몰고 올 때처럼 말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변호사 얘기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문 수석은 정치할 사람이 못 된다’고 비난했습니다만.”

강민석 칼럼

운전 중이라는 그에게 전화로 강 회장의 주장에 대한 입장을 물어봤다. 강 회장은 당시 386그룹과 가까웠다. 그 대표 주자 격인 안희정씨가 나라종금 사건으로 수사를 받게 되자 검찰 쪽을 담당하던 문재인 수석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정치할 사람 못 된다’는 비판에 선뜻 나온 답변이 ‘허무’하게 “저도 공감합니다”였다.

그런 문재인 변호사에게 다시 정치권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부산시장 출마를 권유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달 16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범야권 수뇌부 만찬에서다. 그 자리에서 그는 미소만 지었다고 한다. 정치권의 요구에 대한 그의 대답이 궁금해 지난달 24일 ‘법무법인 부산’으로 찾아갔다.

그의 대답은 6년 전과 똑같은 것이었다.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왜 안 하겠다는 것일까. 까마귀 노는 곳엔 못 가겠다는 것일까. 그는 떠오르는 대로 몇 가지 사유를 열거했다. 다섯 가지였다.

첫째 이유는 “정치를 잘할 수 있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정치 잘할 것 같은 사람들만 하는 게 정치라면 요즘 정치는 왜 저 모양일까. 어쨌든 그의 입장은 확고부동했다.

둘째 이유는 반문형이었다. “정치권에 가면 사람이 영 이상해지지 않습니까.”

몇 마디 부연 설명도 했다.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갔습니다. 좋은 일일 수도 있지요. 그런데 정치권에 들어가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당략에 따라 마음에 없는 말도 해야 한다지만 어떤 사람은 들어가자마자 바뀌었어요.” 사실 쟁쟁한 인사들이 정치를 바꾸겠다며 정계에 입문했다가 정작 바뀐 건 자신인 사례는 너무 많다.

셋째 이유는 현실적이었다. “정치란 게 빚입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부산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적이 있다. “선거를 하려면 재정·조직·사람, 모든 분야에서 신세를 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가 끝나면 그런 게 다 ‘청구서’가 돼 날아오거든요. 만나자고 하면 만나야 하고 술 마시자면 마셔야 하고.”

조금 다른 얘기지만 기자가 아는 어떤 정치인은 4년 전 돈 한 푼 없는 상태에서 당내 기초자치단체장 후보 경선에 나갔다가 6개월 만에 2억원을 빚졌다고 한다. 돈 정치가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현실은 그렇다.

넷째 대목에서 그는 노 전 대통령 얘기를 꺼냈다. “정치란 게… 허망합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게 ‘차출당했다’는 표현을 썼다. 그렇게 불려와 대통령 비서실장,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는 동안 생활비가 모자랐다고 한다. 사실 박연차 게이트로 노 전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들이 사법 처리되는 와중에도 그의 이름은 단 한 차례 언급된 적이 없다. 그렇게 지냈는데도 “도덕성은 땅에 떨어지고, 박수보다는 비판이 많았고, 노 전 대통령도 그렇게 되시고….” 정치가 허망한 이유였다.

다섯째는 결론 격이었다. “정치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사실 그렇다. 과연 정치가 사람을 행복하게 할까. 남을 행복하게 하는 건 고사하고 정치를 하는 본인은 진짜 행복할까.

문 변호사와 면담한 직후 공교롭게 ‘시사IN’이란 매체가 부산시장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허남식 현 시장과의 대결에서만 6%포인트(문재인 33%, 허남식 39%) 뒤졌을 뿐 한나라당의 권철현 주일 대사나 서병수 의원보다 우위였다. 세 번의 가상 대결 모두 진보신당 후보가 10% 정도 지지율을 잠식한 와중에 거둔 성적표다. 진보 진영의 후보 단일화 여부에 따라 ‘문재인 효과’는 더 파괴력을 가질지 모른다.

혹시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해서 다시 전화를 해 봤다. 그의 반응은 이랬다.
“쓸데없는 일(여론조사)을 하셨습니다.”

은근히 ‘빅매치’를 기대하던 이들에게 문 변호사의 입장은 실망스러울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이렇다면 굳은 마음을 돌리려 하기보단 정치문화를 먼저 바꾸는 게 순서일지 모른다.

진영 논리에 함몰되지 않아도 되고,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빚지지 않아도 되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치. 그렇다면 그 역시 “잘해 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가 그렇게 바뀔 가능성은? 비정규직 처리 건 하나만 보면 0%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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