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眞景시대로의 복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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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7~18세기 조선조 숙종시대로부터 정조시대에 이르는 1백25년간은 우리문화의 절정기였다.

사상분야에서 중화 (中華) 인 명나라가 오랑캐인 청나라에 망하자 "이제 조선이 중화가 돼야 한다" 는 조선중화주의가 지식인사회에 팽배하면서 문화 전반에 걸쳐 조선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미술에선진경산수 (眞景山水) 라는 새로운 화풍 (畵風) 이 나타났다.

중국회화 (繪畵) 의 아류로 중국풍을 모방하던 데서 벗어나 조선의 산천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산수화가 등장한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화가가 겸재 (謙齋) 정선 (鄭) 이다.

역사학자들은 진경산수의 출현이 단순히 미술사적 의미에 그치지 않고 문화 각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음을 고려해 이 시대를 '진경시대' 라고 이름붙였다.

양반출신인 겸재는 벼슬이 종2품에까지 올랐으며, 당대의 거유 (巨儒) 우암 (尤庵) 송시열 (宋時烈) 의 제자였다.

그는 북종화와 남종화의 화법 (畵法) 상 특징을 조화시키고, 여기에 주역 (周易) 의 음양조화 원리를 과감히 도입해 조선회화의 새로운 장 (章) 을 열었다. 겸재는 자신의 발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사경 (寫景) 한 것을 토대로 그림을 그렸다.

금강산과 관동지방의 명승지, 그리고 서울 근교와 남한강은 겸재가 즐겨 그렸던 대상들이다.

겸재가남긴 수많은 그림들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라면 '인왕제색도 (仁王霽色圖)' 와 '금강전도 (金剛全圖)' 를 꼽는다.

'인왕제색도' 는 서울 인왕산 아래 살았던 겸재가 75세때인 1751년 비 온 뒤 안개에 감싸인 인왕산을 그린 것이다.

짙은 먹을 여러번 칠하는 적묵법 (積墨法) 으로 표현한 바위들의 웅장한 모습은 겸재 미술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또 금강산의 웅혼한 기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금강전도' 는 금강산 그림들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걸작이다.

서울 호암갤러리에선 오늘부터 오는 10월11일까지 '조선후기 국보전' 이 열린다.

이 전시회에는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등 국보 5점과 보물 14점을 포함해 조선후기의 대표적 미술품 2백50여점이 전시된다.

IMF위기를 단순한 경제위기 아닌 우리의 정체성 (正體性) 이 관련된 문화위기로 규정할 때 이번 전시회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진로를 모색하는 데도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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