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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누가 남산예술센터 이름 바꾸려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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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연극의 봄이 오고 있다. 다들 연극의 위기를 말하는 이때 무슨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린가 하겠다. 그런데 아니다. 적어도 2009년 한 해만 놓고 보면 한국 연극은 부활의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다. 우선 명동 국립극장이 명동예술극장이란 이름으로 복원됐다. 흐릿한 추억의 장소로만 남은 채 사라질 것 같던 연극의 메카가 34년 만에 다시 문을 연 건 기적이다. 장민호·백성희·최은희씨 등 원로 배우들의 눈물을 보는 건 감격스럽다.

한국 연극에 내려진 축복은 이것만이 아니다. 6월 8일 과거 남산 드라마센터가 ‘남산예술센터’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것 역시 각별하다. 1962년 문을 연 남산 드라마센터는 국내 최초의 현대식 극장이었다. 네모난 프로시니엄 극장이 아닌, 원형 무대는 당시로선 낯설지만 신선했다. 현대 연극의 다양한 양식들이 이곳에서 행해졌고, 오태석·이강백·윤대성 등이 드라마센터를 통해 발굴됐다. 명동 극장이 책임감 강한 ‘형’이라면 남산 드라마센터는 실험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동생’ 같았다.

남산 드라마센터는 사실 1960년대 초반 미국 록펠러 재단이 전후 한국 연극의 활성화를 위해 지원금을 낸 게 건립의 시초였다. 여기에 정부가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공적 자금이 투여되면서 빛을 보게 됐다. 배우들의 연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아카데미가 생겼고, 이 아카데미가 70년대 들어 서울예술전문대학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연극 공연장을 운영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인가. 90년대 들면서 남산 드라마센터는 헉헉댔다. 연극 이외의 목적으로 대관이 되기도 했고, 최근엔 서울예대 학생들의 실습장이나 졸업발표회장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래서 위기의 남산 드라마센터를 서울시가 공적 자금을 투입해 새롭게 운영 주체로 나선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칫 휴면상태에 들어갈 뻔하던 역사적 명소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무릇 국가 기관이 문화를 매개로 어떻게 시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 이번 ‘남산예술센터’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와중에 유감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극장명을 둘러싼 논쟁이다. 서울예대 측은 남산예술센터 개관식을 앞두고 아무런 사전 협의 절차 없이 '유치진 극장'이라는 현판을 일방적으로 내걸고는 이 명칭을 써야 한다고 떼를 쓰고 있다. 물론 현 서울예대 총장의 선친인 고(故) 유치진 선생이 한국 현대 연극사에 끼친 공로를 누가 모르랴. 그러나 드라마센터는 개인 것이 아니다. 서울예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건립 때부터 공공의 재산으로 만들어졌고, 재개관에도 공적 자금이 투여됐다면 서울 시민을 위한 공공의 장소로 쓰이는 게, 그래서 거기에 어울리는 이름을 쓰는 게 맞지 않을까.

오늘도 많은 서울 시민은 남산로를 산책할 것이다. 그들이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남산예술센터’에서 정신적인 포만감까지 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역사가 숨쉬는 상징적 공간이 ‘사유화’에 의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건 나뿐만이 아닌 많은 연극인의 바람이다.

박계배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바로잡습니다

“서울예대 측은 서울시와 임대 계약을 하기 직전”이란 대목은 “서울예대 측은 남산예술센터 개관식을 앞두고 아무런 사전 협의 절차도 없이”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