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충격파로 자금대이동…은행신탁서 2조6천억 썰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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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금융.기업 구조조정의 충격이 본격적으로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은행 신탁상품에서 무더기로 돈이 빠지고 있는 반면 은행신탁과 똑같이 예금자보호 대상에서 제외된 투자신탁의 공사채형 수익증권과 머니마켓펀드 (MMF) 로는 불과 4일새 7조6천억원이 몰렸다.

이 때문에 한편에선 만기가 안된 채권까지 팔아치우는 등 자금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쏟아져 들어오는 돈을 감당하지 못해 고심하는 등 금융기관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한편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국내기업의 대외신인도가 하락하자 기업들이 닥치는 대로 달러를 들여와 예금해 놓는 바람에 거주자 외화예금이 1백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달러 공급초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넘치는 달러 = 기업 퇴출이 단행된 이후 미국계 금융기관들을 중심으로 국내기업에 대한 부채상환 요구나 만기연장 거부 움직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관련 기업들은 해외에 예치해 놓았던 달러를 대거 국내로 들여와 예금하거나 서둘러 계열사.자산을 매각, 달러를 확보하고 있다.

7월부터는 1~3년 만기 상업차관 도입이 자유화돼 차관도입 신고도 폭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거주자 외화예금이 1백20억달러에 이르는 등 달러 공급이 수요를 초과, 원화환율 급락에 중요 원인이 되고있다.

◇자금의 대이동 = 이달들어 9일까지 은행 신탁상품에서만 2조6천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간 반면 투신과 은행 고유계정에는 같은 기간 12조원의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때문에 2~3개 은행들은 1천억원 안팎의 금융기관간 양도성예금증서 (CD) 를 발행하고 만기가 안된 채권까지 팔아치우는 등 현금동원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면 뭉칫돈이 들어온 투신이나 우량은행은 어떤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퇴출당할지 몰라 대출을 늘리지 않는 바람에 자금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시중 자금사정과 금리의 괴리 = 은행신탁에서 돈이 빠지자 은행들이 신탁대출 회수에 나서거나 기업어음 (CP) 만기연장을 거부하는 바람에 가계와 중소기업 자금난은 심화되고 있다.

반면 투신사는 불어난 예금을 콜이나 국공채 등에 주로 운용, 콜금리나 국공채 수익률이 하락세를 보이는 등 시중 자금사정과 금리 사이의 괴리도 벌어지고 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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