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워싱턴의 對北 '찬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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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번주초로 예정됐던 한.미 양국간 대북제재 완화논의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아예 물건너가게 되는 모양이다.

제재논의의 미측대표로 내정된 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논의 특사 지명자가 상원인준 일정으로 인해 워싱턴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 미측의 연기사유였다.

이 와중에 북한 무장간첩 침투사건이 발생했고 대북제재 완화를 논의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데 아무런 이견이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얼마전 북한은 중유제공 지연을 이유로 삼아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 가능성으로 위협한 바 있다.

또 파키스탄 핵실험 이후 북한은 미사일의 대외수출 사실을 확인하며 가뜩이나 대북한 미사일협상 재개를 갈망하고 있는 미측의 비위를 거슬렀다.자신들이 초청해 8월 중순께 친선경기를 가질 예정이던 미여자대학 농구단의 방북도 무기연기했고 8월 24일 참석키로 했던 카터센터 주최 회의에도 불참을 통보했다.

사실 미 정부는 대북제재 완화를 희망한 김대중대통령의 발언이나 미국내 무게있는 한반도전문가들이 대거참여한 외교협회 보고서가 대북 경제제재 완화를 촉구한 사실을 부담스럽게 여겨 왔다.

더욱이 한.미협의를 앞둔 시점에 기승부리는 북한의 '압박전술' 을 빤히 보면서 대북제재 완화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북한에 끌려간다는 인상을 줄까 우려하기도 했다.

따라서 미국은 햇볕론을 강조해온 한국정부가 스스로 잠수정과 무장간첩 침투사건을 계기로 대북정책 전반을 재검토하고 있는 마당에 대북제재 완화 논의를 무산시키는 데 큰 부담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 정부측의 전향적 제의에 따라 성사될 예정이던 대북제재 완화 논의의 판을 깬 장본인은 대북제재 철폐를 주장해왔던 북한 자신이 돼버린 셈이다.

가까이 하기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북한을 상대하며 우리측 선의에 기초한 일방적 대북정책에는 한계가 있으며 결국 한.미공조만한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케 하는 상황이다.

길정우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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