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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이창호 VS 창하오 12년 이어진 맞대결…내일 끝장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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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창하오는 이창호만 만나면 몸이 굳었다. 그는 마치 이창호라는 이름을 빛내주다가 사라지는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듯 보였다. 그러나 창하오는 죽었다가 살아 돌아왔다. 최근엔 이창호와의 먹이사슬마저 180도 바꿔놓고 있다. 인생역전이다.

이창호 대 창하오의 32번째 공식대국이 4일 도쿄에서 열린다. 단판 승부로 펼쳐지는 제14회 후지쓰배세계선수권(우승상금 1500만 엔) 준결승이 그 무대다.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시선은 창하오가 아니라 이창호에게 집중되고 있다. 바둑사의 미스터리로 기록될 만큼 신비스러운 능력을 보여줬던 이창호가 과연 이대로 꺾이고 말 것인지 너무도 궁금하기 때문이다.

지난주 중국 쓰촨성에서 열렸던 춘란배 결승전은 충격이었다. 이창호는 창하오에게 2대0으로 완패했다. 역전패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이창호는 자기가 원하는 바둑을 두지 못했고 그 바람에 힘겨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과거에 볼 수 없던 현상이었다. 2006년 이후 창하오와의 상대 전적도 2승6패로 크게 밀리게 됐다. 무수한 의문이 쏟아져 나왔다. 이창호가 약해진 것인가, 아니면 창하오가 강해진 것인가. 한 번 사라진 인물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게 승부세계의 법칙인데 창하오는 완전 바닥에서 어떻게 다시 살아난 것일까.

1980년대 중국의 일인자였던 녜웨이핑은 89년 조훈현 9단과의 한판 승부(응씨배 결승전)에서 진 뒤 영영 뒤안길로 사라졌다. 녜웨이핑의 뒤를 이은 마샤오춘은 이창호에게 수없이 패한 뒤 역시 이른 나이에 무대를 떠났다. 그 뒤를 이은 새로운 일인자 창하오는 중국 팬들로부터 거의 비원(悲願)에 가까울 정도의 기대를 모았지만 번번이 이창호라는 철벽에 가로막혔다. 97년 첫 대면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12연패를 당했고 주요 결승전이나 준결승에선 모조리 져 그야말로 ‘밥’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창하오도 마샤오춘처럼 그렇게 사라지는구나 생각했다. 이창호와 동 시대에 태어난 것이 불행이라며 아쉬워했다. 이때가 2003년 무렵이었다.

그러나 창하오는 2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응씨배에서 중국 기사로는 최초로 우승했고 한 많은 농심배에서도 불패의 수문장 이창호를 격파하고 중국에 첫 우승컵을 선사했다. 창하오는 연말 최고의 체육선수에게 주어지는 대상도 받았다. 2007년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또 한차례 이창호를 꺾은 뒤 창하오는 ‘절망’이 힘의 원천이 됐다고 말했다. 승부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가니 신기하게 마음이 편해졌다며 8세 연상의 부인(장쉔 9단)과 나란히 앉아 담담하게 웃었다. 이창호 9단은 이런 와중에 은연중 상처를 입고 있다. 세계대회에서 준우승만 6번한 최근의 성적도 씁쓸하지만 창하오와의 관계 역전 역시 그 못지않게 씁쓸하다. 자존심 강한 이창호에게 창하오와의 32번째 대국이 더욱 무겁고 진지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후지쓰배 준결승 또 한판은 박영훈 9단 대 강동윤 9단의 대결. 결승은 6일 열린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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