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을사보호조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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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을 병탄하기 위한 예비적 음모로 이토 히로부미를 파견해 조선의 외교권을 접수하고 통감부를 설치한다는 등의 5개 조문의 협약안 체결을 강요한다. 군대를 동원한 강압적 분위기에서 외무대신 박제순과 하야시 곤스케 일본 공사 사이에 굴욕적인 조약이 체결되니 이것이 을사조약이다.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할 당시의 국내 식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졌던 장소인 덕수궁 중명전이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된다”처럼 ‘을사보호조약’으로 많이 쓰지만 이는 바른 표현이 아니다.

‘보호(保護)’란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봄, 또는 잘 지켜 원래대로 보존되게 함’이란 뜻이다.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한국 정부를 강압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이기 때문에 ‘을사조약’으로 써야 한다. ‘을사5조약, 을사늑약’ 등으로도 불린다.

“을사조약 강제 체결로 일어난 을사 의병은 양반 유생층과 평민 출신 의병들이 주도했다” “일본은 을사늑약 이후 대한제국의 국권과 황실의 권위를 말살하려고 창경궁에 박물관·식물원과 함께 동물원 건설 계획을 세운다”처럼 쓰인다.

권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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