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400여명 집단 입국하면] 길었던 '집단 입국' 협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동남아에 흩어져 지내던 탈북자가 한 국가로 모여든 것은 지난 4월께다. 한국 정부가 이곳의 탈북자를 집단으로 넘겨받기 위한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다. 5월 들어 한국 고위관리가 외교채널로 본격 협의에 들어가자 중국 내 탈북자까지 국경을 넘어와 합류했다. 한 관계자는 "인접 동남아 국가들에는 탈북자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삽시간에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이들은 수십명 단위로 해당 국가가 마련해준 임시수용소에서 생활했다. 한국과 미국.일본 등지의 북한 인권단체들이 나서 이들의 생활을 도왔다. 가족 단위의 탈북자까지 가세하고 한국행 희망이 높아지자 북한 내 가족까지 데려오면서 탈북 행렬에는 노인과 젖먹이.임산부 등이 망라됐다.

실무협의가 마무리되면서 한국 측 관계자로 구성된 합동신문조가 현지에 투입됐다. 이들은 탈북자와의 개별 면담을 통해 한국행을 노리고 합류한 일부 중국동포와 중국인을 골라냈다. 본인의 희망 등을 고려해 한국행 최종 명단이 짜였다.

정부는 당초 남북관계 경색과 다음달 3일 15차 장관급 회담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8월께나 한국행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탈북자를 관리 중인 국가에서 "하루라도 빨리 데려갔으면 좋겠다"며 재촉하는 바람에 일정을 당겼다. 전세기 두대를 이용해 한국으로 무사히 데려온 뒤 발표함으로써 '조용한 외교'를 통해 집단 탈북자 문제를 해결한 첫 사례로 삼으려 했지만 사전에 일부 언론에 알려져 무산돼 버렸다. 해당 국가도 이에 대해 "탈북자들의 신상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유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