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예술영화 찬밥신세…전용관 도입 유명무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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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올 여름 극장가는 '아마겟돈' , '고질라' 와 '여고괴담' 을 빼고나면 할 얘기가 없어진다. 극장을 가고 싶어도 별다른 메뉴가 없다는 서글픈 현실은 그동안 활기를 띠었던 예술영화전용관과 한국영화전용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국내 유일의 예술영화전용관 동숭시네마텍. 지난해 3월 문화관광부 (당시 문체부) 로부터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승인받았다. 하지만 최근 이곳에 걸린 프로그램은 일반 상영관과 별 다를게 없다.

현재 상영중인 영화는 '록키호러픽처쇼' 와 '여고괴담' .중국 천안문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태평천국의 문' 과 영국 여성감독 샐리 포터의 '탱고레슨' 같은 '진지한' 영화들은 이 극장의 문을 두드렸다가 '퇴짜' 를 맞았다.

그동안 이극장 덕에 상업영화의 틈바구니에서도 '천국보다 낯선'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같은 '예술영화' 를 접할 수 있었던 관객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다.

'동숭시네마텍이 잘팔리는 영화에 매달려 '재미' 를 보느라고 진짜 예술영화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고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전용관은 아니지만 동숭시네마텍 못잖게 예술 영화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해오던 코아아트홀 역시 색깔이 바랬다는 지적이다.

올들어 부쩍 직배사들의 영화를 많이 상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6월 한국영화전용관으로 의욕적인 출발을 한 허리우드 극장 역시 제 역할을 거의 포기한 상태. 올들어 상영된 한국영화는 '러브러브' '바이준' '이방인' '물위의 하룻밤' 등이 전부다. 지금은 몇주째 '딥 임팩트' 걸려있다.

"소개할 만한 과거의 한국영화들은 판권문제가 걸려서 힘들고, 최근작들은 종로 주변 다른 극장들의 견제로 배급을 받지 못해 전용관 의무 규정인 전체 상영 일수의 5분의 3을 한국영화로 채우기가 어렵다" 는 것이 극장측의 설명이다.

아직도 수십편의 '볼만한 예술영화들' 이 상영관을 못 찾아 창고에서 잠자고 있다. 또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줄긴 했지만 이것이 전용관의 '변신' 과 기획력의 부재를 변명해주진 못한다.

여기에 예술영화에 우르르 몰렸다가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관객들의 '거품' 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많은 영화인들은 '다양성' 의 가능성을 보이던 한국의 영상문화가 '원점' 으로 회귀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안타까워 한다.

이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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