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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의 고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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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물건'인 무선호출기(일명 '삐삐').

그러나 아직도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삐삐'를 쓰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삐삐 가입자는 012(리얼텔레콤) 번호 2만5000명, 015(서울이동통신) 번호 1만8000명으로 모두 4만3000명. 가입자 수는 적지만 식별번호가 2개나 된다는 점에서, 무려 4600여만 명이 쓰는 휴대전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셈이다.

용도는 순수호출과 정보전송 두 가지다. 순수호출 서비스는 의사나 군인처럼 긴박한 연락을 언제 어디서나 빠르고 간단하게 받아야 하는 직종에서 많이 쓴다. 정보전송 용 삐삐는 주로 증권시장 관련 업계와 고객들이 주 고객이다.

삐삐는 1997년에 가입자 1500만 명를 돌파하면서 '한국 정보기술(IT) 신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불어닥친 휴대전화 대중화 바람에 밀리면서 가입자가 급감했다. 이익을 내는 것은 고사하고 통신 매출도 기지국 유지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적자 사업으로 추락했다. SK텔레콤은 삐삐 가입자가 2001년에 10만 명으로 줄자 사업을 리얼텔레콤에 넘겼다. 그 뒤론 순수호출보다 증권·교통·재난용 정보호출용으로 쓰임새가 많이 옮겨갔다.

사양 길 10년인 삐삐를 놓고 정부와 업계 모두 고민이 많다. 정부는 비효율적으로 아깝게 낭비되는 삐삐의 식별번호를 회수하고 싶고, 서비스 회사는 당장이라도 사업을 접고 싶다. 하지만 가입자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전기통신법 상 임의로 식별번호를 뺏거나 서비스를 중단할 수 없게 돼 있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최근 조심스레 식별번호 통합 방안을 검토 중이다. 015 번호를 단계적으로 012로 단일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명분도 그럴듯하다. 4세대 무선인터넷 서비스인 와이브로가 활성화하면 '1인 2휴대전화 시대'가 열려 이동통신 식별번호가 모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휴대전화 식별번호는 2세대 서비스용으로 011·016·017·018·019가, 3세대용으로 010 통합번호가 쓰인다. 나머지 013은 주파수공용통신(일명 무전기)용이고, 014는 유선데이터통신용이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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