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사교육비 줄이려면 대학부터 바뀌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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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온 나라가 사교육비 문제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어딘가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아픈 증상은 초·중·고 교육현장에서 나타나지만 몸살의 근본 병인(病因)은 다른 곳에 있다. 대학 진학이 매우 중요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학 입시정책에 따라 초·중·고 교육은 바뀌어 왔다. 그런데 대학 입시정책은 대학 교육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선 대학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의 대학은 20세기 산업화 시대가 요구하는 대규모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산업화 시대의 획일적이고 지식 위주 주입식 대학 교육에서는 수능 점수 중심으로 학생을 선발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대학은 수준 차이는 있겠지만 같은 전공이면 대개 비슷한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21세기 지식기반 글로벌시대는 대학이 창의성과 글로벌 역량을 가진 인재를 기르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학 교육은 이 같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도 우리나라 대학 교육이 아직 산업시대의 교육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 교육은 경제사회가 요구하는 부합도에서 61개국 중 51위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단순 암기식 지식 전달 교육에서 탈피해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또한 도덕적 가치관이 붕괴되고 있는 오늘의 사회 현실에서 도덕성·정직성 교육으로 글로벌 시민 교육이 함께 구현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대학 입시제도, 대학 교육과정과 콘텐트, 평가 및 대학의 재정 지원 방식이 근본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학생의 잠재 가능성을 발굴하고 다양한 재능을 키워 주며 글로벌 역량과 바른 인성, 창의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대학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최근 정부는 대학입시 선진화를 위해 입학사정관제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입시제도의 정착도 기대하기 어렵다. 창의성과 글로벌 역량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학생을 수능 점수로만 선발할 수 없다. 학생의 재능과 창의성, 인성과 성장잠재력을 함께 고려해 선발해야 한다. 점수 위주의 입시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특성화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이 많아지면 학생들의 대학 선택 폭이 넓어지고, 특정 대학들을 향한 입시 경쟁은 완화될 것이다.

오늘날 국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학평가는 대부분 대학원 연구평가이지 대학 교육 평가는 아니다. 따라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등교육국은 혁신적인 대학 학부 교육의 질적 평가를 위해 AHELO(Assessment of Higher Education Learning Outcome)를 도입해 2011년 타당성조사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전통적 객관식 선다형 평가로부터 논리적·분석적 사고 및 문제해결 능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하고 대학입학 시와 졸업 시를 비교해 대학 교육의 실질부가가치를 평가하게 된다. OECD는 현재의 대학 평가가 대학의 본질적인 교육평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대학 교육에 해를 끼친다고 주장했다. 우리 대학의 평가도 다면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에 따라 대학교육도 새롭게 변화돼야 한다.

사교육비 문제는 오늘처럼 획일화된 교육으로 대학들이 서열화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대학들이 특성화된 교육 내용으로 학생들을 다양하게 선발해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혁신적인 대학 교육이 이루어질 때 입학사정관제도도 빛을 발할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도가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을 때 특정 대학들을 향한 입시 경쟁은 완화되고, 사교육비 문제도 잦아들 것이다. 사교육비 문제의 해결방안은 대학 교육의 혁신적 변화에 있다.

김영길 한동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