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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선수들에게 꽃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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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우리 돈으로 1조3800억원. 불과 17일간의 올림픽에 그리스 정부가 쓸 대(對)테러.치안 비용이다. 대회 출전 선수는 1만6000명. 그러니까 한 사람에 8600만원씩 들어가는 꼴이다.

"아테네 시내는 갖가지 최신 장비로 뒤덮인다. 동원되는 무장병력이 7만명. 특수부대(OGSD)도 만들었다." 담당 장관(공공질서부)은 "어떤 올림픽도 이보다 더 안전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리스는 씁쓸하다. 저녁 까마귀떼 같은 테러범들을 막으려 쏟아붓는 돈과 노력이 너무 크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막 3주 전의 아테네는 썰렁하기만 하다. 관광지도, 호텔도 아직은 휑하다. 외신들은 '불황에 테러 걱정이 겹친 탓'이라고 본다. 오죽하면 아테네시장이 22일 세계를 향해 이렇게 청했다.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거대한 파티장에 와주세요. 역사상 이렇게 많은 그리스인이 꾸미는 무대는 처음입니다."

올림픽의 역사는 시대 질서의 변천사다. 지나간 108년을 들여다 보면 그때 그때 지구촌이 어떻게 돌아갔는지가 리듬처럼 나타난다.

초창기엔 운영이 난장판이었다. 길 잃은 마라톤 선수, 그리고 그에게 길을 잘못 알려줘 엉뚱한 코스를 뛰게 한 경찰관(1900년 파리. 그 경관은 자책감에 자살했다). 수영 경기는 배들이 둥둥 떠다니는 센강에서 열렸다. 마라톤 도중 구급차를 얻어탄 뒤 슬쩍 1위로 골인했다가 들통난 소동(1904년 세인트루이스)도 있었다. 기록 검증이 안돼 12년 뒤 우승을 인정받은 선수도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벌어진 일에 비하면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얘기들이다.

위기의 시작은 전쟁이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 때문에 세 번의 대회(1916, 40, 44년)가 못 열렸다. 올림픽의 목숨이 간당간당했던 때다. 다시 평화가 온 뒤 전범국들은 응징됐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은 1920, 24년 대회에 못 나왔다. 2차대전 뒤의 48년 대회엔 일본도 함께 못 나왔다.

80년 모스크바 대회는 두번째 위기다. 미국 주도의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보이콧했다. 그 저변은 이념 대립이다. 거기에 한국과 일본도 동조했다. 러시아는 바로 뒤 LA 올림픽(84년)을 거부해 보복했다. 북한은 88 서울 올림픽에 안 왔다. 뿐만 아니라 대한항공기 폭파 테러까지 저질렀다. 올림픽 테러는 그 앞뒤로도 있었다. 72년(뮌헨) 검은 9월단의 이스라엘 선수단 인질 테러, 96년 애틀랜타 대회 때의 공원 폭탄테러다.

무질서→전쟁→보이콧→테러. 이런 것들에 올림픽은 상처 입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장애물을 만나면서도 올림픽이 규모와 수준, 화려함을 더해온 건 평화와 화합에 대한 세계인의 염원이 있기 때문이다.

아테네 올림픽은 또 한번의 시험대다. 이라크 등에서 빚어지고 있는 테러집단의 준동, 그리스 무정부주의자들의 움직임 등 위협 요소는 아직도 있다. 행여 이번에도 정치적 충돌이 빚어질 것인가. 사람들은 이전처럼 환호하며 올림픽을 즐길 수 있을 것인가. 물론 후자일 것이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1세기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올림픽은 '생환' 이상의 값어치와 의미가 있다.

이번 올림픽의 첫 경기는 그리스와 한국의 축구다. 모든 경기에 앞서 개막 이틀 전(8월 11일)에 열린다. 올림픽을 처음 연 나라와 올림픽으로 테러 피해를 봤던 나라. 그런 저런 의미를 담아 한국 선수들이 그리스 선수들에게 꽃을 선물하는 장면은 어떨까.

김석현 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