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화해와 포용 함께하는 ‘중도의 길’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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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오래된 것이다. 원래 ‘진보주의(liberal)’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신념을 뜻했는데, 1823년 스페인 혁명 중에 절대군주제에 반대한 파를 ‘리베랄레스(liberales)’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그 개념 자체도 변해 오늘날 진보주의는 대내정책에서 복지와 형평을 중시하고 대외정책에서 보호주의적 성향을 띠는 입장을 말하고, 보수주의는 평등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자유경쟁과 개방,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입장으로 대략 구분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의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간 대립과 갈등은 이런 신념과 관점의 차이에 기인하는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동안 우리 사회에 팽배해 온 편 가르기와 상대편에 대한 부당한 매도와 공격, 이로 인한 감정적 상처에 기인하는 면이 오히려 큰 것으로 보인다. 영남 사람들이 모두 보수가 될 수 없고, 호남 사람들이 모두 진보적일 수 없다. 한나라당원이 매사에 보수적, 민주당원이 매사에 진보적 신념을 가진 것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이념적으로 ‘중도의 길’을 표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편에 대한 진정한 화해와 포용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는 지난해 경제전문 시사주간지(중앙일보 시사미디어 간) ‘이코노미스트’(7월 15일자, 945호)에 실린 특별기고를 통해 이명박 정부가 처한 곤경의 원인을 분석하고 정책기조의 재설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한 적이 있다. 현 정부가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은 보수언론과 학계, 그리고 한나라당의 지난 정부에 대한 집중적인 비판과 공세에 힘있었던 바 크다. 지난 두 정부를 ‘좌파 정부’로, 그 정책을 ‘좌파 정책’으로 규정하고, 이로 인해 ‘경제 파탄’이 초래되고 ‘잃어버린 10년’을 보내게 되었다는 비판이 많은 국민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고, 동조를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포장(political framing)’에 힘입어 정권교체를 이룬 이명박 정부는 바로 자신을 출범하게 한 그 정치적 포장에 갇히게 되어 국민적 지지기반을 잃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지난 두 정부가 이념적 성향과 정치적 수사에 있어서는 진보적이었으나 실제 취한 정책 내용에 있어서는 좌파 정부라고 할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후 자의든 타의든 자본시장 개방, 글로벌 스탠더드의 도입, 금융자유화 등으로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이러한 정책기조가 그대로 유지되었다. 김대중 정부에서 4대 복지제도의 체계가 갖추어지고 노무현 정부에서 복지예산의 비중이 높아졌으나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취약하고 최하위의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종합부동산세 도입, 재산세의 강화는 분명 진보적인 정책이었으나 법인세와 개인소득세율은 내렸으며 적극적 자유무역협정(FTA) 정책으로 개방은 오히려 확대되었다. 정치적 수사와 정서야 어떠했건, 실제 정책 내용은 중도 내지는 보수적 조합을 취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를 좌파 정부, 좌파 정책이라고 규정한 공세를 기반으로 출범한 현 정부는 지난 정부가 취해온 바와는 다른 정책의 조합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결국 오늘날 세계적 관점에서 보건 국내적 관점에서 보건 극히 우파에 편향되어 있는 정책 조합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1년 반이 지난 지금 초기의 정책기조를 수정해 보다 균형된 정책을 시도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와 국민을 위해 모두 필요하고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 한국이 서 있는 발전단계적 입장에서 보면 국민들의 복지와 형평에 대한 욕구가 높을 수밖에 없고, 지구촌 경제환경을 보면 효율과 경쟁력 강화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이들을 조화시키는 정책조합을 택해 가지 않으면 어떤 정부도 대중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책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세를 확보할 수 없으며 성공적인 정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정책기조를 조정하고 서민대책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변화의 시도가 국민들의 진정한 이해와 넓은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과거의 정치적 포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반대편과의 진정한 화해를 시도해야 한다. 반대편의 분노는 단순히 정책기조에 따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도 똑같이 왜곡된 포장으로 상대를 공격하려 해서는 안 된다. 왜곡된 정치적 포장은 결국 국가정책을 왜곡시키고 상대편의 응어리가 되어 대립과 분열이 심화되는 악순환을 지속시킨다. 그러니 만약 진정한 화해의 손짓이라면 그것에 화답해야 한다.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