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의 불길한 더블딥 예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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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02면

18세기 때 일이다. 철학자인 볼테르에게 한 청년이 찾아왔다. 자기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장차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볼테르는 의사가 돼라고 했다. 청년은 자기 같은 사람이 무슨 수로 의사가 되겠느냐고 자조했다. 그러나 볼테르는 “의사란 자신도 잘 알지도 못하는 약을 더욱 더 알지 못하는 사람의 몸에 들이붓는 사람”이라며 “아무것도 모를수록 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답했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의사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으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이 얘기에 요즘 딱 들어맞는 사람은 경제학자와 경제전문가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다. 경제학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성싶다. ‘100년 만의 위기’를 사전 경고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 지금도 경제가 바닥을 쳤는지, 회복 양상은 어떨지 등에 대해 똑 부러지는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우왕좌왕에 갈팡질팡이다. 세계적인 경제석학조차 ‘한 입으로 두말하기’는 예사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얼마 전 초인플레이션을 걱정했다. 그러나 입에 침도 마르기도 전에 세계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큰 폭으로 하향 조정했다. 폴 크루그먼이나 누리엘 루비니 같은 석학들은 물론, 워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 같은 실물 금융의 거두들도 마찬가지다. 냉탕(비관론)과 온탕(낙관론)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물론 그들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닐 게다. 지금의 경제 현실이 그만큼 복잡 미묘하기 때문이지 싶다.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마저 미로를 헤맬 때는 위험 부담을 줄이는 선택을 하는 게 맞다. 우리 경제는 인플레이션보다 경기 침체의 부작용이 더 큰 나라다. 또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에서, 수출이 줄고 있는데 본격적인 경제 회복 운운하는 건 성급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하반기 경제운용 계획을 짜면서 확장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건 잘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와 씨름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지각변동이 닥쳐 올 게 자명해서다. 단지 시기만 불분명할 뿐이다. 미국의 막대한 쌍둥이 적자와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불안 때문이다. 세계화 시스템도 위기를 맞는다. 현 질서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인 우리 경제도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이 닥칠 때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지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해야 한다. 그때가 되면 민주주의나 이념 논쟁이 ‘좋았던 시절의 배부른 얘기’로 치부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국내의 대표적인 정치경제학자인 한신대 윤소영 교수의 분석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발간한 책 『금융위기와 사회운동노조』에서 이미 더블 딥(Double-Dip)을 예측했다. 윤 교수는 1차 위기는 오래가지 않고 2010년부터 회복된다고 했다. 그러나 회복 기미는 잠시, 2012년께부터 세계 경제는 다시 수렁에 빠진다고 전망했다. 물론 2차 위기가 1차보다 훨씬 더 크고 오래간다. 원인은 달러 체제의 위기다. 막대한 이중 적자를 해결하려면 달러 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려야 한다. 당연히 달러 체제와 세계화 시스템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IIE)도 달러화의 급격한 평가절하 필요성을 진작부터 주장하고 있다. 그것 말고는 미 경제가 회생할 방법이 없다. 무역적자는 이미 미국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의 4~5% 정도면 그런대로 감당할 수 있지만 6%를 넘어선 지 오래다. 국채 해외 매각 등으로 메우는 건 진작 한계에 도달했다는 얘기다. 누가 언제 불씨를 댕기느냐만 남았다.

이런 얘기가 신화 속 카산드라의 불길한 예언에 그치기를 나도 진심으로 원한다. 그러나 카산드라는 그리스 군대가 남겨놓을 목마의 위험을 예언했지만 트로이는 이를 무시함으로써 결국 패망하고 말았다. 유비(有備)면 무환(無患)이라는 걸 이 정부가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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