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정부 정책 잘해야 낮아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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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호 26면

사회 갈등이 돈 버는 일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버드대 경제학과 대니 로드릭 교수는 1970년대 석유 파동을 겪은 나라들의 다양한 위기 극복을 ‘갈등의 경제모형’으로 분석했다. 소득 불균형 정도가 낮고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일수록 사회 갈등이 적었고, 이런 나라일수록 위기에서 빨리 벗어났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모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사회갈등지수를 개발했다. 이 지수는 소득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민주주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민주주의지수’와 세계은행이 측정하는 ‘정부효과성지수’의 산술 평균으로 나눠 산출했다.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민주주의 성숙도와 정부 효과성이 낮을수록 갈등지수는 높아진다. 소득 분배는 사회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고, 민주주의와 정부 정책은 갈등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소득 분배 수준이 크게 움직이지 않더라도 민주주의와 정부 정책을 잘하면 사회 갈등 정도를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0.7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44)을 웃돌았다. 연구소는 한국이 사회 갈등 때문에 치르는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27%에 달한다는 분석도 내놨다.

돈이 보이는 경제 지표 - 사회갈등지수

한국의 갈등 지수가 높게 나온 것은 민주주의 성숙도가 27위로 꼴찌였고, 정부 정책의 효과성도 23위로 평균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행정권이 다른 헌법기관보다 강하고, 정당 체계도 불안정하며, 반대 집단에 대한 관용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민주주의지수가 낮게 나왔다.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하고 정부 규제가 세련되지 못해 정부효과성지수도 떨어졌다.

박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갈등을 잘 조정해 사회가 안정돼야 그 위에서 시장경제가 꽃필 수 있다”며 “사회갈등지수가 10% 하락하면 1인당 GDP가 7.1% 증가한다”고 했다. 그는 “서로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에 나서는 개방적인 정치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미디어와 시민단체도 갈등을 완화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사회적 공기(公器) 역할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돈이 되는 지표로서 사회갈등지수를 잘 읽으려면 여야 정치판과 정부 정책의 움직임도 관심 있게 볼 필요가 있다.
정치가 시끄럽지 않고, 정부 정책이 잘 먹혀 국민의 신뢰가 쌓여야 경제도 잘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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