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원 절반도 못 채우는 대학 그냥 둬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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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정부가 부실 사립대에 대해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 모집이 어려워 경영난을 겪고 학사운영이 부실한 30여 개 사립대의 경영 실태 조사를 다음 달 시작한다. 독자 생존이 어려운 대학에 12월까지 ‘경영부실 대학’ 판정을 내리고 다른 대학과의 합병이나 해산을 유도할 예정이다. 대학 교육 전반의 동반 부실을 막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본다.

국내 대학은 지원자보다 모집정원이 많은 ‘정원 역전’ 상태다. 고교 졸업생의 84%가 대학에 진학하는데도 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이 숱하다. 지난해 전체 사립대의 42%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일반대 17곳과 전문대 10곳이 정원을 30% 이상 채우지 못했고, 정원의 절반도 못 채운 대학이 5곳이나 된다. 신입생 채우기에 급급한 이런 대학들이 교육투자를 제대로 할 리 없다. 교육여건은 열악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해법은 부실 대학 구조조정이다. 학생수 부족과 경영 곤란으로 설립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대학은 문을 닫게 하는 게 옳다. 물론 자발적인 퇴출을 유도하는 게 잡음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교과부가 대학 간 인수합병 촉진을 위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이나 해산 대학 잔여재산의 공익·사회복지법인으로의 출연 허용 등 자발적 퇴출 경로를 고심하는 건 수긍할 만하다.

문제는 그런 정도로 부실 대학의 퇴출이 제대로 이뤄지겠느냐는 점이다. 상당수 대학들이 벌써부터 어떻게든 부실 대학 판정을 면해 일단 살고 보자는 움직임을 보이는 걸 보면 지극히 회의적이다. ‘2년 연속 신입생 충원율 50% 미만’ 등 한계 대학에 대한 기준을 정해 강제 퇴출시키는 방안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국고로 귀속시키게 돼 있는 해산 대학의 잔여재산 일부를 설립자에게 돌려주는 특례를 한시적으로 시행해 자발적 퇴출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과거 정부도 대학 구조조정에 나섰으나 대학 반발에 밀려 흐지부지되곤 했다. 이번에도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해선 대학 경쟁력은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