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뒤바뀐 미·일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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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20일에 있었던 '도쿄 (東京) G7 및 아시아 10개국 긴급통화회의' 를 보며 10여년전의 세계 경제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지난 10여년간의 세계 경제판도 변화를 보면 이 말의 참뜻을 알 법도 하다.

엄청난 재정과 무역의 쌍둥이 적자에 허덕이며 경쟁력이 떨어진 자동차를 위시한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각종 보호무역주의적인 수단 동원에 급급하던 것이 불과 10여년전의 미국 경제 모습이 아니었나. 그래서 일본 등 서방 선진제국들은 미국이 우선 재정적자를 줄이는 노력과 함께 올바른 거시경제정책을 펴줌으로써 확산일로에 있는 보호무역주의 추세를 막을 수 있다는 등 미국 경제운용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던 것이다.

급기야 85년 9월에는 뉴욕에서 선진 5개국 (G5) 대표들이 모여 소위 플라자 합의를 갖게 됐고,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미국 달러화의 평가절하를 위한 외환시장 개입에 공조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반면 일본은 막강한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을 진주만 공격이 아닌 경제력으로 점령해 버릴 추세로 미국의 상품시장과 자산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갔다.

미국 자동차 내수시장의 30%를 점유하기에 이르렀고, 뉴욕의 명물인 록펠러센터 빌딩에서부터 할리우드의 컬럼비아 영화사까지 사들였다.

10여년이 지난 오늘 이들 경제의 모습은 어떠한가.

현재 미국 경제는 놀랍게도 물가안정 (2.2%정도의 물가상승) 과 낮은 실업률 (28년만의 최저실업률인 4.3%) 을 유지하면서도 벌써 7년째 호황을 누리고 있다.

특히 지난 1분기중에는 5.6%에 달하는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그리고 미국은 균형재정을 이룩하는 힘든 일까지 해냈다.

현재 미국 경제는 거품을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게다가 금융서비스산업이나 정보화 관련산업의 경쟁력은 물론이려니와 자동차산업을 위시한 제조업의 경쟁력마저 일본을 오히려 능가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미국 경제는 올해 2천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국제수지적자를 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가 사실상 '달러본위제도' 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 인해 당장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될 수 있는 특수입장에 있다.

반면 일본 경제는 70년대 초반 오일쇼크 이래 최악의 경제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 1분기 일본 경제는 6년여만에 처음으로 불황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지난 90~97년 사이 미국의 국내총생산 (GDP) 이 18.4% 성장할 동안 일본은 그 절반에도 못미치는 8.7% 성장에 그쳤으며, 올해 미국의 4% 수준 성장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마이너스 성장을 감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90년부터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한 일본 금융기관, 특히 은행들의 부실채권 문제로 일본 경제는 현재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다행히도 일본은 아직도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며, 최고의 외환 보유국이기 때문에 외환위기는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일본 경제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엔화의 평가절하를 더욱 가속화해 왔고, 이것을 그대로 방치할 때는 한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의 금융.외환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뿐 아니라 세계경제 전반에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미국이 엔화 지지 (支持)에 나서게 됐고, 이를 계기로 '도쿄긴급통화회의' 가 개최된 것이다.

10여년전과는 대조적으로 이번 도쿄회의에서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선진제국들과 현재 금융.외환 위기를 맞고 있는 아시아 여러나라들은 일본이 올바른 거시경제정책과 과감한 경제개혁을 단행해줄 것을 강력히 촉구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일본 정부에 대해 부실채권 문제 해결을 포함하는 금융개혁을 가속화하고 내수진작을 위해 법인세.소득세 및 소비세 등의 영구감세를 촉구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이 지난 10여년동안 살을 깎는 경제구조조정 노력을 경주해 온 데 반해 90년대에 들어와서도 일본은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대내외 경제정책의 방향전환을 하지 않고 부실한 금융부문의 개혁과 과감한 규제혁파 (革罷) 를 미루어 왔기 때문에 오늘의 어려움을 맞게 된 것이다.

이러한 미국과 일본 경제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보며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희망을 갖고 구조조정의 고통을 이겨내자.

사공일<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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