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에 찬바람 司正 예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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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정가에는 한기가 느껴진다.

청와대가 빼든 서슬퍼런 사정 (司正) 의 칼끝이 점차 정치권으로 조준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비리사건 수사 또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연루된 여야 정치인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하다.

검찰조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 최소한 40명은 넘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무엇보다 긴장도를 더하는 대목은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경고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정신 못차리게 몰아붙이는 개혁드라이브로 볼때 이번엔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 강하게 와닿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폭풍전야의 고요' 와 같은 불안감이 여의도를 싸늘하게 짓누르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측이 느끼는 긴장 체감도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검찰이 소환조사를 벼르고 있는 이신행 (李信行) 의원 비자금건을 비롯, 종금사.개인휴대통신 (PCS) 인허가.청구비리, 김선홍 (金善弘) 리스트 등 모든 사건에 한나라당 의원 연루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도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야당측은 "인위적 정계개편을 위한 야당 압박용" 이라고 목청을 높이면서 옥죄어 오는 칼끝을 차단키 위한 방어선 구축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여권은 한나라당이 또다시 단독으로 제출한 임시국회 소집 요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회기중 현역 의원을 소환조사하려면 체포동의안을 처리해야 하지만 수적으로 열세인 여권이 이같은 무리수를 두지는 못할 것이란 계산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임시국회라는 우산으로 눈앞의 우박은 피할 수 있게 됐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데 야당측 고민이 있다.

우선 여론의 비난을 어떻게 감내하느냐는 점이다.

열리지도 않는 임시국회를 거듭 단독으로 소집하는데 따른 비난이 한나라당측으로 쏟아질 경우 선거를 앞두고 적잖은 부담이 아닐수 없기 때문이다.

또 경제권은 구조조정의 태풍을 맞아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현실에서 "개혁대상 1호인 정치권도 개혁하라" 고 갈수록 조여 오는 민심의 압박을 저항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걱정이다.

그래서 야당은 '벙어리 냉가슴' 이다.

문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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