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59주년] 한국 해·공군 전투력, 북한에 압도적 우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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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T-34 전차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왔다.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한 철조망도, 목책도, 참호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고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 군이 보유한 무기 가운데 북한군 전차를 부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전차 위로 뛰어올라가 해치를 열고 전차 속에 수류탄이나 불 붙인 휘발유병을 던져넣는 것뿐이었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59주년을 맞았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국군은 거의 맨주먹이나 다름없었다. 6·25 당시 국군은 총병력 10만3827명에 육군 8개 사단을 갖고 있었다. 해군과 공군은 항공기 32대와 전투함 1척이 고작이었다. 이에 비해 북한군은 총병력 20만1050명에 중무장된 10개 사단으로 남한을 공격했다. 또 야포 600문, 항공기 196대, 초계정 16척과 어뢰정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군과 북한군의 사단을 비교하면 국군이 얼마나 빈약했는지 알 수 있다. 양측의 사단 숫자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지만 전투력은 우리 사단이 절대적으로 열세였다. 국군 사단의 주요 화력은 81㎜ 박격포 36문, 60㎜ 박격포 81문, 105㎜ 곡사포 15문 정도였다. 이에 비해 북한군 사단은 박격포가 120㎜ 18문, 82㎜ 81문, 60㎜ 108문이었고, 야포는 122㎜ 곡사포 12문, 76㎜ 평사포와 곡사포 48문 등이었다. 더구나 북한군 야포는 사정거리가 11∼13㎞지만 국군의 야포 사정거리는 불과 6.5㎞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북한군의 사단이 국군보다 10배의 전투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북한군은 T-34 등으로 무장한 독립기갑연대와 기갑여단의 지원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북한군은 3일 만에 서울을 함락시키고 낙동강까지 밀어붙였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 개입이 없었더라면 낙동강 전선조차 구축하지 못해 한국이 한반도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59년이 지난 지금 한국군은 완전히 달라졌다. 2008년 기준으로 국군 병력은 65만 명으로 북한의 119만 명보다 크게 적은 숫자지만 전투력은 만만치 않다는 평가다. 해군과 공군은 국군이 북한에 대해 압도적이다. 이지스함 등 한국형 구축함은 수동 시스템으로 된 북한의 함정을 먼저 보고 정확하게 격침시킬 수 있다. 99년 1차 연평해전 때 해군이 압승, 전투력이 증명됐다.

F-15K와 KF-16 전투기 등은 북한의 전투기에 비해 훨씬 강력하다. 연세대 문정인(정치외교학)교수는 24일 서울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열린 제12회 항공 우주력 국제학술회의에서 "북한의 탄도 미사일이 문제이긴 하지만 핵무기만 사용하지 않으면 재래전에선 국군이 승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군의 명성은 국제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이라크 자이툰 부대와 아프간 다산·동의 부대 등이 외국군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실적을 보여 모범이 됐다.

◆다채로운 6·25 행사= 6·25전쟁 59주년 기념식이 25일 오전 11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다. 참전용사와 군 원로, 해외 참전용사 등 50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는 25일부터 9월 15일까지 ‘이야기가 있는 권총 특별전’이 열린다. 역사의 현장에 등장했던 권총과 007 시리즈 등 영화에 나왔던 모델 등 128점의 권총이 선보인다.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저격 때 쓴 권총과 49년 김구 선생 암살 권총과 똑같은 모델의 총도 볼 수 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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