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MB, 중도정치 제대로 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1면

한국 정치에는 재미있지만 불행한 사이클이 있다. 진보 대통령이든, 보수 대통령이든 재임 시기별로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는 측면에서는 재미있지만, 그 사이클의 끝에는 불행한 대통령, 이합집산하는 정치권, 그리고 냉소하는 국민들의 막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에서 불행하다.

국민들의 높은 지지와 기대 속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지만, 대통령당 만들기에 먼저 나서는 대통령에게 실망해 국민들은 등을 돌리고, 대선 불복 세력이 이를 마케팅 하는 것이 불행 사이클의 제1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창당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은 공천을 통해 대통령당 만들기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새 정부가 정치 놀음에 몰입하는 인상을 줘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한 중도 혹은 반대 성향 국민들의 등을 돌리게 할 뿐 아니라 핵심 지지 세력마저 반 토막 내는 뺄셈의 정치가 된다. 이에 따라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격히 하락하고, 대선 불복 세력이 이를 마케팅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탄핵 소추를 당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뜨거운 촛불에 데었다.

대선 불복을 경험한 대통령이 우경화(혹은 좌경화)하는 것이 제2기다. 다수 국민은 대선 불복을 경험한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으로 거듭나기를 바라지만, 지지도가 하락한 대통령은 아스팔트우파(혹은 좌파운동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그 결과 정책 노선 역시 우경화(혹은 좌경화)한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4대 개혁입법을 밀어붙였으며, 이명박 정부는 촛불 이후 ‘법치’라는 이름 아래 경찰과 검찰에 대한 의존성이 커지고 있다.

제3기는 그동안 권력 자원을 나눠 받기 위해 대통령을 지지하던 여당도 대통령을 떠나는 불행 사이클의 마지막 시기다. 여당은 다가오는 대선에서 심판 받지 않기 위해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것은 물론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합집산을 거듭하게 된다. 국민들은 이런 여당에 염증을 느끼고 야권을 선택하지만 새로 선택된 야권 역시 동일한 사이클을 반복하는데, 이것이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이 불행 사이클을 되짚어 보면, 대통령은 두 번의 실수를 한다. 제1기에 대통령당 만들기에 나선 것과 제2기에 정책적으로 우경화(혹은 좌경화)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대통령이 이 불행한 사이클에서 벗어나는 방법 역시 두 가지다. 하나는 공천 민주화를 통해 대통령당 만들기의 의혹을 받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국민 중 소수에 지나지 않는 조직화된 우파나 좌파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공천 민주화는 대통령의 불행을 막을 뿐 아니라 국회의원이 정당의 거수기가 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다. 보수(혹은 진보)에 서서 중도를 향한 정치를 한다면 대통령의 불행을 막을 뿐 아니라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갈지자로 정책이 바뀌는 난맥상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불행 사이클을 깨달은 것인지,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일회적인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기조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반인권적, 국가 우위적 사고를 지니고 있으면서 보수인 체하는 사람들을 멀리해야 한다. 국민의 삶에 대한 국가의 억압적 개입을 경계하는 것이 진짜 보수이기 때문이다. 또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면, 그것이 중도적 혹은 진보적 대안이라 하더라도 과감하게 채택해야 한다. 보수적 대안만으로 정책의 선택폭을 제한하면 최선의 정책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민에게 정책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되,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임기 내에 완성할 수 있는 정책이란 없고, 아무리 대못질을 한다 해도 그것은 국력만 낭비한 채 다음 정부에서 너무나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