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기업 선정]구조조정 첫 성과…의미·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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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상 처음으로 55개 기업에 집단 퇴출선고가 내려졌다.

경과야 어쨌든 정부가 추진해온 기업 구조조정의 가시적인 성과가 처음 나온 것이다.

정부도 퇴출기업 명단 발표와 함께 보다 강력한 기업 구조조정의 추진을 약속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물론 재정경제부.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부처가 추가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태세다.

공정위는 5대 그룹 계열사간의 부당한 내부거래를 차단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또 정부가 의도하는 빅딜에 비협조적인 기업에 대해선 금감위가 금융기관 여신을 중단해 제재를 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앞으로의 구조조정 일정은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55개라는 숫자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5대 그룹의 경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소기업들이 대부분이다.

다른 기업들도 이미 부도났거나 부도 직전의 상태가 대부분이다.

기업들이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호응하기보다 손해를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성의 표시' 를 하는데 더 신경썼기 때문이다.

이번 한번의 수술로는 환부가 깨끗이 도려내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금감위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후대책으로 지속적인 부실정리를 내놓았다.

금감위는 이번이 구조조정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도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벌여 경쟁력 있는 우량기업만 살아남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5대 그룹 계열사의 경우 부실계열사 정리과정에서 함께 어려워지면 즉시 퇴출 대상에 집어넣겠다고 못박았다.

또 6대 이하 그룹의 경우 다음달중 은행들이 구조조정 대상을 골라 지원토록 했다.

은행들은 어렵겠다 싶은 그룹을 골라 계열사 통폐합.자산매각.인원정리.출자전환 등 구조조정을 요청하게 된다.

기업이 불응하면 여신지원을 끊을 수도 있다.

말이 지원이지 은행이 부실기업의 수술을 '집도' 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경우에 따라서는 그룹이 완전 해체되는 것도 예상된다.

이헌재 금감위원장도 "은행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이 결과적으론 그룹해체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일단 퇴출 대상을 공개한 이상 앞으로는 사후대책이 중요하다.

당장은 금융시장의 혼란이 예상된다.

퇴출 대상 기업들이 즉시 연쇄부도나지는 않겠지만 자금시장은 한층 경색될 가능성이 있다. 은행들도 안전하지 않다.

부실기업을 청산하면 잠재부실이 장부에 반영돼 손실로 처리해야 한다.

이때 금융 구조조정과 맞물려 부실기업과 거래가 많은 은행들은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부실기업 판정이 앞으로 계속된다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물론 부실기업을 그때그때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론 맞다.

그러나 기업정보가 공개돼 있지 않고 은행의 심사능력이 낮기 때문에 금융기관은 추가 퇴출에 대해 다시 불안해하고 있다.

이같은 불안을 빨리 진정시키도록 사후대책을 펴나가야 구조조정에 대한 대외신뢰도도 높아질 수 있다고 금융계는 지적하고 있다.

한편 이번 부실기업 정리는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간의 경과를 보면^먼저 은행이 알아서 부실기업을 고르라고 하고^중간에 이런저런 채널로 정부가 기준을 암시하며^결과가 기대에 못미치면 정부가 직접 나서서 목표치를 제시하는 스타일이다.

금감위는 궁극적으로 은행의 완전자율에 맡길 생각이지만 은행이 정상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이같은 방식을 계속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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