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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외국인 2만 명이 662억원 쓰고 간 이 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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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

지난 주말, 그러니까 19~21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행사 하나가 열렸다. 허벌라이프(Herbalife)란 다국적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회였다. 일개 기업의 지역 총회가 뭐 그리 대단한 소식일까 싶지만, 이 행사를 유치하려고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서울시·경기도·고양시가 똘똘 뭉쳐 유치전을 벌였다. 그 결과, 역시 치열한 유치전에 나섰던 싱가포르를 물리치고 최종 개최지로 선정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 행사 하나 때문에 입국한 외국인이 2만 명. 여태 한국에서 열린 국제회의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그들이 사흘간 한국에서 쓴 돈은 어림잡아 662억원. 영화 ‘주라기공원’의 총수입을 현대차 판매 대수와 비교했던 옛 잣대를 들이대면 쏘나타 승용차 3310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장사다. 경제 파급 효과까지 따지면 약 2100억원이 넘는 수입이 생겼다는 분석도 있다. 고양시에선 호텔·모텔이 모자라 서울시내 숙박시설까지 동원했고 이에 가수 신승훈과 장나라가 행사장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처럼 대규모 국제행사를 유치해 수입을 올리는 산업을 MICE(Meetings, Incentives, Conventions, Exhibitions)라 부른다. 우리나라가 최근 주목하는 관광산업의 신동력이다. 다시 말해 네팔처럼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도 없고, 몰디브같이 코발트 빛 바다도 없고, 로마처럼 도시 안에 기원 전 유물이 널려 있는 형편이 못 되는 나라에서 외국인을 불러와 돈을 쓰고 돌아가게끔 유인할 수 있는, 그나마 유력한 수단인 것이다.

우리나라만 유난을 떠는 건 아니다. 미국의 시카고·라스베이거스 같은 전형적인 컨벤션 도시 말고도, 동양권에선 싱가포르가 일찌감치 자리를 깔고 터줏대감 행세를 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는 시 관광공사가 컨벤션센터를 직접 관리하고, 싱가포르는 대형 행사를 개최하면 일정 비용을 되돌려준다. 가끔 국내 언론이 지적하는 일부 공무원의 유람성 외유가, 해당 국가의 입장에선 MICE인 셈이다.

올 외국인 입국자 수는 지난달까지 320만 명을 넘어섰다. 관광산업에서 외국인 입국자는 외국인 관광객과 유사한 의미로 해석된다. 관광이 목적이 아니어도 입국만 하면 관광객이 된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했던 외국 선수단도 관광객이고, 한국의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으려고 내한하는 외국인도 관광객이다. 관광산업에서 중요한 건, 그들의 목적이 아니라 그들이 쓰고 가는 돈이다. 관광산업이야말로 애타는 마음으로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산업이 아니다. 보여줄 게 마땅치 않으면 만들어내기라도 해야 한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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