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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Battle] 오키친 황준성 셰프 vs 이재훈 셰프 뚜또베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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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규칙

-과제로 나온 재료로 애피타이저·메인·디저트 코스를 만든다.
-세 가지 요리를 모두 90분 안에 끝낸다.
-도전 셰프는 두 명까지 보조 셰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음식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황준성 셰프 에스프레소, 민물장어의 느끼함을 숨기다

왼쪽부터 이경호 셰프, 황준성 셰프.

커피의 모든 것을 접시마다 담아냈다. 커피의 쌉쌀한 맛, 고소한 향, 달콤한 맛은 각 요리의 이야기로 살아났다. 애피타이저·메인·디저트로 이어지는 코스마다 ‘에스프레소’ ‘헤이즐넛’ ‘마끼아또’라는 제목을 달았고, 이는 요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식감의 균형도 훌륭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푸아그라와 민물장어 애피타이저에 말린 방울토마토를 곁들였다. 메인인 돼지고기 요리에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완두콩을 곁들여 먹는 내내 입과 눈을 즐겁게 했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황준성(30)셰프는 만화 같은 그림이 잔뜩 그려진 바지를 입고 배틀에 나왔다.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가 그려져 있는 일명 ‘파스타 바지’라고 했다. 그의 스승이자 오키친의 주인인 스스무 요나구니 셰프가 물려줬단다.

황 셰프의 이력은 종횡무진이다. 대원외고를 나와 축구감독이 되고 싶어 체대에 들어갔다. 학교를 다니다 트럼펫 연주에 빠져 군악대를 지원했다. 제대 후 1년 동안 호주 여행을 하다 요리에 눈 떴다. 돌아와선 조리학과를 복수전공했고, 호텔에서 근무하다 오키친으로 왔다.

그는 한 마디로 날라리처럼 보인다. 그런 자유로움은 그대로 요리에서도 드러난다. 한식·이태리식ㆍ스페인식 등 요리 스타일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 그는 “어떤 스타일이든지 맛있으면 좋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범생이다. 요리책을 읽으며 밤늦도록 공부하는 게 취미란다. 비슷한 연배의 소위 뜨는 레스토랑 셰프들과 스터디도 한다. 레시피 위주가 아닌, 요리를 둘러싼 인문학적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얼마 전에는 이탈리아 파스타의 원형이자 수타 파스타인 ‘피치 파스타’를 재현했다. 계란을 넣지 않고, 밀가루와 물을 적절히 배합해 두 손으로 비벼 만드는 파스타다.

주말 농장을 운영하는 오키친의 셰프답게 ‘좋은 재료’에 대한 신념도 강하다. 오키친은 그날 들어오는 재료에 따라 메뉴를 짜는 걸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쓰는 채소와 허브 대부분은 도봉산 인근 농장에서 직접 키운 것이다.

오키친 서울 서울시 이태원동 168-14 / 02-797-6420 / 연중무휴

애피타이저
커피 간장 소스를 곁들인 푸아그라와 민물장어

요리의 부제목인 ‘에스프레소’답게 커피의 쌉쌀한 맛을 살렸다. 푸아그라와 민물장어라는 묵직한 재료에 커피 간장 소스를 곁들였다. 기름진 입안을 커피의 쌉쌀한 맛으로 씻어내는 효과를 노렸다. 요리에 함께 곁들인 토마토는 낮은 온도의 오븐에 10시간 이상 말려 쫄깃쫄깃했다. 직접 재배한 어린 산초잎과 붉은 한련화 잎은 요리에 색을 입혔다.

메인
커피빈 크러스트를 입힌 핫스모크 돼지고기와 완두콩 플랑

메인 요리 ‘헤이즐넛’은 커피향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커피 원두에 직접 열을 가해 돼지고기에 커피 향을 입히는 핫스모크 기법을 이용했다. 고기 겉면에 헤이즐넛 원두를 으깨어 만든 ‘커피빈 크러스트’를 입혀 씹을 때마다 커피향이 올라오게 했다. 완두콩을 갈아 넣은 부드러운 커스터드에 민트를 넣어 상큼함을 더했다.

디저트
커피 부디노와 커피 그라니떼

디저트 ‘마끼아또’는 커피와 단맛의 조화였다. 캐러멜 푸딩의 일종인 부디노에 말린 나문재 나물을 꽂았다. 디저트에 나물을 사용한 것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달큼한 푸딩에 짭짤한 나물의 조화가 맛깔스러웠다. 캐러멜 푸딩은 흙이 되고, 사해 소금을 입힌 나문재 나물은 눈 내리는 나뭇가지가 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커피 그라니떼는 코코넛 밀크 소르베를 얹어 시원하고 깔끔하게 코스를 마무리하게 했다.

“시골 밥상처럼 푸짐한 게 좋다”
이재훈 셰프 아메리카노, 누룽지탕에 고소함을 더하다

왼쪽부터 유상봉 셰프, 이재훈 셰프.

주제인 커피가 코스별로 점점 강해져 디저트에서 절정을 이루도록 하는 구성을 만들어냈다. 사용한 커피의 형태도 다양했다. 애피타이저에는 커피의 향만을 추출하기 위해 커피 원두를, 메인에서는 육수에 진한 에스프레소 원액을,

디저트에서는 아몬드 리큐어를 섞은 아메리카노를 사용했다. 기교 없이 투박하게 담아낸 모양새에서 편안한 가정식 요리를 추구하는 이 셰프의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났다.

김현명 기자

“미국식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레스토랑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다 요리에 몰입하게 됐어요.”

이재훈(37) 셰프는 대학에서 전자통신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주저 없이 요리사의 길을 택했다. 해태 델리의 외식사업부에 입사해 2년 만에 부점장의 자리에 올랐고, 파스타 전문점인 ‘소렌토’에 입사했다. 그리고 7~8년 정도 현장에서 일한 뒤, 2004년 이태리 ICIF요리학교로 뒤늦게 유학을 떠났다. 본토의 오리지널 이탈리안 요리를 모르면, 결국 흉내밖에 낼 수 없다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6개월간 요리 연수를 한 후, ‘라싸브어’와 와인바 ‘뱅상’을 거쳐 지금의 뚜또베네에 들어왔다. 이 셰프의 요리는 여느 이탈리아 음식점들처럼 깔끔하고 예쁘게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거칠다.

“시골밥상처럼 푸짐하고, 투박한 게 좋아요. 예쁘게 장식하려면 손도 많이 가고, 미리 만들어놔야 하는데 저는 이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런 투박한 이탈리아 음식은 오히려 독창적이다. 그래서 그의 음식을 쫓아다니는 애호가가 많아 ‘매니어층 셰프’라고도 불린다. 타인의 끼니를 챙기다 보면 정작 식구들과 함께 밥먹는 시간이 없어 가족들에게 미안하단다. 그래도 아들이 아빠가 요리사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즐겁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초대할 테니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만들어달라고 조른단다. 그때마다 요리사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뚜또베네 서울시 청담동 118-9 / 02-546-1489 / 연중무휴

애피타이저
원두 훈제 안심 카르파초

레드와 화이트의 색감 대비, 차가운 카르파초와 따뜻한 커피 크림 거품의 식감 대비를 보여주었다. 안심은 원두를 갈아 훈제하고, 우유는 원두와 함께 약한 불에 서서히 끓여 핸드믹서로 거품을 만들었다. 먹었을 때 커피 맛이 극명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은은한 커피 풍미가 혀끝에서 오래 감돈다.

메인
에스프레소 오겹살 수육과 커피젤리 라비올리

폰도 브루노·에스프레소·각종 견과류를 넣고 삶은 오겹살 수육을 레드와인에 졸인 무화과와 곁들여 냈다. 커피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 메뉴였다. 라비올리(右)는 만두피 안에 육수가 들어간 중국 만두 샤오롱바오처럼 라비올리 안에 커피육수를 담은 게 특징이다.

디저트
티라미수 폭탄

양식 디저트인 티라미수와 중식의 누룽지탕을 접목했다. 누룽지탕의 또 다른 이름은 ‘동경폭격’, 갓 튀겨낸 누룽지에 뜨거운 소스를 부을 때 나는 소리 때문이다. ‘티라미수 폭탄’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착안한 것 이다. 마스카포네 치즈크림과 누룽지 위에 아마레토를 섞은 아메리카노 커피를 부으면, 누룽지탕처럼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지글거린다. 청각적인 재미까지 더해지니 디저트로서 격이 높아진다.

맛 평가단 심사

WIN 황준성 셰프
커피향 가득 담은 메인 요리가 승부 갈라

결국은 ‘커피’였다. 커피가 주 재료가 되지 못하는 만큼, 요리마다 어떤 아이디어로 커피를 풀어냈는지에 따라 평가가 갈렸다. 황준성 셰프는 커피의 특성을 분석해 ‘이야기가 있는 요리’로 풀어냈고, 이재훈 셰프는 커피와 다른 식재료가 어우러지도록 애썼다. 대결은 팽팽했으나 메인 요리에서 앞선 황 셰프 쪽이 최종 승자가 됐다.

애피타이저 황 셰프가 내놓은 ‘커피 간장 소스를 곁들인 푸아그라와 민물장어’는 무거운 두 재료를 함께 쓰면 부담이 된다는 고정관념을 깬 요리였다. 이 셰프의 ‘원두 훈제 안심 카르파초’는 먹고 나서 입안에 커피의 부드러운 향이 남아 애피타이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메인 커피 향을 가득 끌어낸 황 셰프 쪽으로 기울었다. 고기에 헤이즐넛 원두로 훈제 처리하고 커피빈 크러스트를 입힌 방식은 씹으면 씹을수록 커피의 향을 느끼게 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제철 완두콩과 잎을 요리에 잘 매치해 텃밭이 식탁에 오른 듯한 싱그러움을 안겨줬다. 이 셰프의 오겹살 수육은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돼지고기 편육의 이탈리아식 변형처럼 편안한 느낌을 줬다.

디저트 이 셰프의 ‘티라미수 폭탄’에 찬사가 쏟아졌다. 평범한 재료를 매치해 새로운 맛을 찾았다는 평이었다. 바삭한 찹쌀 누룽지와 부드러운 마스카포네 치즈크림, 그리고 에스프레소의 쌉쌀한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황 셰프의 ‘커피 그라니떼’는 눅눅한 입맛을 상큼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했다.

코스의 조화 커피의 쓴맛으로 시작해 입맛을 살린 뒤 향을 음미하게 하고 깔끔한 단맛으로 마무리한 황 셰프의 코스가 좀 더 조화로웠다는 평가였다. 주제인 커피가 점점 강하게 드러나도록 한 이 셰프의 코스 구성도 독창적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맛 평가단

●박재은 요리사·칼럼니스트로 『레드쿡 다이어리』 『레드 캣 오픈키친』 등 요리 관련 TV 프로를 진행했다. 『육감유혹』 『밥시』 등을 썼다.

●백지원 세계음식 연구가로 음식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모락모락 밥 한그릇』 『배우고 싶은 동남아요리 한 가지』 등을 펴냈다.

●신효섭 블로그 ‘블링블링 신군 쿠킹클래스(blog.naver.com/ssambear)’ 운영자. 동양매직쿠킹클래스·이마트 등에서 가정 요리를 가르치고 있다.

●최승주 요리연구가 겸 푸드스타일리스트. 『최승주와 박찬일의 이탈리아요리』 『맛있는 도시락』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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