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이 소 받아라 - 박수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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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김용택(1948~ ), '이 소 받아라 - 박수근' 부분

내 등짝에서는 늘 지린내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업은 누이를 내리면 등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지요
(중략)
어머니는 동이 가득 남실거리는
물동이를
이고 서서 나를 불렀습니다
용태가아, 애기 배 고프겄다
용태가아, 밥 안 묵을래
저 건너 강기슭에
산그늘이 막 닿고 있었습니다
강 건너 밭을 다 갈아엎은 아버지는
그때쯤 쟁기 지고 큰 소를 앞세우고
강을 건너 돌아왔습니다
이 소 받아라

아버지는 땀에 젖은 소 고삐를
내게 건네주었습니다



박수근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지난 시대의 풍경이 떠오른다. 그가 즐겨 쓰던 마티에르 기법은 물감을 여러번 덧칠해 화강암처럼 두터운 질감을 내는 것인데, 거기 배인 물기와 냄새는 농부나 아낙들의 것이기도 했다. 지린내가 가실 날 없던 소년의 등, 물동이를 인 어머니의 머리, 아버지가 건네준 땀에 젖은 소 고삐의 질감이 이 시에서도 화강암처럼 만져진다.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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