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 흡수·합병에 유의할 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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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제결제은행 (BIS) 의 자기자본비율 기준에 합격한 5개 우량은행이 다른 부실은행들을 흡수.합병하는 기초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은행은 모두 오십보 백보다.

5개 우량은행 가운데도 그만하면 다른 은행을 흡수.합병할 만한 단단한 대출자산 구조, 자본구조, 수익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만한 곳은 불행히도 한 군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수.합병을 정부가 추진하게 된 것은 부실은행을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다스릴 길 없는 대규모 금융재앙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

염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흡수.합병 절차를 거쳐 새로 태어나는 은행이 다시 부실에 빠지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을 철저하게 유의해야 할 것이다.

첫째, 퇴출시킬 부실은행을 먼저 결정하고 이들 은행의 자산과 부채는 면밀하게 사정 (査定) 돼야 한다.

특히 대출자산의 부실 여부와 그 회수 가능성, 회수가능 금액, 담보물의 가액과 가처분성 (可處分性) 을 단단히 평가해 기술해야 한다.

이 가운데 우량자산이라고 분류된 것이 나중에 부실로 밝혀지는 일이 있어서는 큰 일이다.

둘째, 어떤 은행을 흡수할 것인가 하는 것은 철저하게 흡수할 은행의 의사에 맡겨야 한다. 상호 보완성과 친화력있는 은행끼리의 결합이라야 다소나마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나 감독기관이 짝짓기를 강제로 결정하는 것은 금물이다.

셋째, 흡수한 은행은 자신의 운영전략에 따라 자유롭게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새로 태어나는 은행에 대해서는 현행 은행법에 의한 주식보유와 임원선임에 대한 주주권 행사 제한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

그래서 '주인있는 은행' 을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감독' 과 '주인' 이 없는 가운데 경영기술과 충성심이 증발돼 있었다.

그 공백을 정관 (政官) 등 세력에 의한 인사와 대출이 채웠다.

이것이 오늘날 은행부실의 원인이다.

이 전철을 절대 밟지 않도록 하려는 만반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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