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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깊은 곳 경북 21개 문중 가보, 서울 납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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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죽책(竹冊)은 대나무를 얇게 쪼개 앞뒷면에 빽빽히 ‘사서오경’을 기록한 과거시험 대비용 교재다. 작은 것은 크기가 지름 5㎝, 길이 15㎝이며, 큰 것은 지름 7.5㎝, 길이 19㎝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대유학자로 꼽히는 퇴계 이황(1501~1570)은 과거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을까. 퇴계가 27세 때인 1527년 치른 향시 답안지에는 붉은 글씨로 ‘二下(이하)’ ‘三上(삼상)’이라 적혀있다. 당시 점수는 1·2·3등급에 각 상·중·하를 구분해 총 9단계로 매겼다. 언뜻 좋은 점수가 아닌 듯한데 당시 진사시 1등, 생원시 2등을 차지했단다. 시험관들이 점수를 워낙 박하게 줘서 다른 응시자들 점수는 더 형편없었다는 뜻이다. 경북대박물관이 소장한 이황 답안지가 서울로 나들이왔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경상북도와 함께 경북지역 선비문화와 유교문화를 보여주는 ‘선비, 그 이상과 실천’ 특별전을 24일 개막한다.

◆문서에서 문서로 이어진 선비의 삶=과거급제라는 일생일대 목표를 이뤄야 했던 양반가 자제들에겐『논어』『맹자』『중용』『예기』『대학』 등 배워야 할 서책이 산더미였다. 얇게 쪼갠 대나무에 ‘사서오경’의 문구를 적어 통에 담은 ‘죽책(竹冊)’이 필수품이었다. 임금이 내린 벼슬아치 임명장은 가보로 간직했고, 자리가 바뀔 때엔 ‘해유서’란 인수인계 문서를 남겼다.

선비들이라고 글 쓰고 공부만 한 건 아니었다. 경치 좋은 곳에서 시문을 지으며 풍류를 즐겼으니 술병과 찬합 도시락, 활과 화살, 바둑은 가까운 벗이었다. 이렇듯 선비의 문화를 시시콜콜 보여주는 각종 유물은 내로라하는 경북지역 21개 문중에 내려온 가보 200여 점이다. 문화재 가치가 높은 것으론 안동권씨 충재종택에서 내놓은 ‘충재승무청원 만인소’ ‘충재영의정교지’ ‘충재일기’ ‘김구 진묵’ 등이 눈에 띈다. 모두 보물로 지정됐다. ‘만인소’는 요즘으로 치면 ‘1만명 서명 운동’ 같은 것으로 한 뜻을 모은 선비들의 이름을 받아 임금에게 올린 상소다. 김구(1488~1534)는 문신이자 조선 4대 명필로 꼽힌 이다.

◆선비의 그늘에 가린 여성=전시장엔 의성김씨 학봉종택의 제사 풍경을 재현해놨다. 제상 뒤에 놓인 병풍은 이황이 남긴 글씨를 자수로 놓아 만든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황보명 학예연구관은 “종부가 수를 놓다 눈이 멀 지경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남성들이 긴 종이를 켜켜이 접어 손바닥만하게 만든 휴대용 족보로 가문의 뿌리를 익혔다면, 며느리들은 한글로 적은 족보를 외우며 그 집안에 뼈를 묻어갔다.

여성들이라고 숨통 트일 여지가 없었던 건 아니다. 봄철에 경치 좋은 곳을 찾아 화전놀이를 하며 한글로 지은 시문이 ‘내방가사’다. 조선판 여성용 보드게임 ‘규문수지여행지도’도 흥미롭다. 인현왕후가 폐출돼 친가에 머물던 때 개발했다. ‘재녀(才女)’ 칸에는 ‘재주 있음이라’는 설명이 있고, ‘치산(治産)’ 칸엔 ‘세간 잘 다스림이라’고 적어놨다. 말이 실수로 ‘짐승’ 칸에 들어서면 게임이 종료된다. 놀이의 끝까지 가면 ‘정경부인’으로 신분이 상승한다. 놀면서도 유교의 가치를 배웠던 것이다.

◆경북의 풍광을 안은 전시장=전시장 한가운데에서 정자에 앉아 대숲에 이는 바람을 체험할 수 있다. 관람자가 다가서면 목판 위에 종이를 놓아 책으로 찍어내는 장면이 입체영상으로 재현된다. 전시장을 빠져나가기 전에 꼭 뒤를 돌아볼 것. 마지막 코스에는 갓 쓴 어른들의 모습과 패스트푸드를 먹는 젊은이들의 이미지가 교대로 뜨는 모니터가 있다. 과거와 현재가 아닌, 현재에 공존하는 경북의 풍경이란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기획전시실 1에서 열린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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