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클리닉] 시험지 앞에 서면 작아지는 아이, 어떻게 하면 자신감 키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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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순미양과 필자의 병원을 찾은 순미 어머니는 딸을 측은하게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참 안타까워요. 제가 대신 해줄 수도 없고….” “성적 안 나와도 되니 맘 편히 먹고 시험 보라고 안심도 시켜봤어요. 그래도 안 돼 시험 때 떨지 않게 해준다는 별의별 약을 다 먹여 봤고요. 그런데 백약이 무효네요.”

병원 방문 당시 순미는 대입과 무관한 모의고사에서는 평균 1.3등급 정도지만 대입과 직결되는 내신은 3등급에 턱걸이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성적이었다. 필자는 순미에게 “시험 때 어떤 증상이 나타나니”라고 물어 봤다.

“선생님이 시험지를 들고 교실에 들어오시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쿵쾅거려요” “분명히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 또 소변이 마렵고” “심할 때는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시험지가 하얗게 보일 때도 있었어요”.

옆에서 어머니도 한 말씀 거들었다. “시험 첫날 시험 망치면 그 이후는 빵점이라고 보시면 딱입니다. 다시 풀어 보면 다 아는 문제였다며 엉엉 울기만 해요.”

진단 결과 이런 순미의 증상은 이미 중학교 1학년 때 시작됐다. 분명 학습 능력은 메이저 리거급인데 성적은 동네야구 수준이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심한 시험불안(test anxiety) 증상 때문이었다. 시험불안이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시험을 보는 상황(스트레스)→긴장→교감신경 자극→아드레날린 분비→각성과 의욕→집중과 기억력 향상(반짝 효과)→(과도해지면) 기억을 관장하는 뇌의 해마 부위의 에너지 공급 차단→뇌활성도 감소→집중과 기억력 감소→당황→더욱 긴장→더욱 집중과 기억력 감소→시험 실패 등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에서는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돼 스트레스를 물리친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지나치면 코르티솔이 과다하게 분비돼 오히려 뇌 신경 사이의 연결을 끊어버리는 역할을 한다. 그로 인해 해마(HIPPOCAMPUS)가 완전히 위축되면서 급기야 “머리가 텅 빈 느낌” 이 들게 된다. 바로 이게 시험불안의 원인이며 연습엔 강하고 실전에 약한 학생들이 시험장에서 겪는 고통의 정체다.

순미는 바로 가상현실 체험에 들어갔다. 이 가상현실은 자신이 실제로 아침에 일어나 수능장으로 향하고 후배로부터 응원을 받으며 입실해 1교시 언어영역 시험을 치르는 내용이다. 처음 순미는 이를 보자 눈물을 펑펑 흘리며 말했다. “그만 볼래요.” 필자는 순미를 설득해 네 번 연속 가상현실 동영상을 보게 했다. 순미는 그제야 “이젠 좀 괜찮네요”라고 말했다. 이 가상현실 체험은 3D입체 영화 수준은 아니지만 수험생들을 사뭇 긴장시키게 구성돼 있다. 처음 보면 오히려 불안감이 더욱 증가하지만 계속 보면 볼수록 감소하는 탈감작효과(DESENSITIZATION) 이론을 이용한 방법이다.

5년여 전 필자는 시험불안이 있는 79명의 재수생을 대상으로 이 같은 가상현실 체험을 시켜 보았다. 그 결과는 필자도 놀랄 정도였다. 시험불안이 줄어들면서 수능 원점수가 무려 9.3점 높아진 것이다.

순미는 그 후 인지행동 치료를 통해 시험에 대한 불안감을 서서히 줄여나갔다. 요즘은 시험 때 오히려 담대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자녀에게 “실수도 실력이고 불안한 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라는 틀에 박힌 말을 해주기 보다 원인을 찾아 해결해 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가 아닐까.


정찬호(43) 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의학박사

▶마음누리/정찬호 학습클리닉 원장

▶중앙대 의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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