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경제<정치<병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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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계 10위권을 넘보던 경제대국 한국은 구조 파탄으로 나락에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군사대국 한국의 지위는 아직도 든든하다.

지난해말 영국의 군사연구소는 한국 군사력을 세계 6위로, 북한을 7위로 꼽았다.

북한 병력이 1백만을 넘는데 비해 남한 병력은 70만이 안된다.

그러나 군사비 지출은 남한쪽이 압도적이다.

북한은 GNP의 25% 수준을 군사비에 쏟아붓지만 80년대 이래 경제침체로 인해 이를 늘리지 못해 온 결과 지금은 GNP의 3~4%를 쓰는 남한에 비해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북한군사력의 우위는 80년대까지도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미군의 주둔은 한반도 평화유지의 절대요건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상대보다 세 배 넘는 군사비를 들이며 확보해 온 첨단무기와 장비는 한국의 군사력을 다른 차원에 갖다놓았다.

아무리 율곡사업이 비리의 대명사로 알려졌지만 그 예산을 몽땅 까먹었을 리는 없다.

80년대 미국은 군비경쟁으로 옛 소련을 압박함으로써 공산권의 붕괴를 촉진했다.

당시 미국은 산업경쟁력의 퇴화로 인해 2등국가로 전락할 위험까지 지적되고 있었지만 레이건 행정부는 스타워스 계획을 밀어붙였다.

소련은 이에 대응하는 군사비를 지출하려다가 빈약한 경제규모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으니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격이다.

공산권 붕괴가 오늘날 세계경제 속에서 미국의 패권을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도 하나의 원대한 경제전략이었던 셈일까. 지난달 '한반도 평화군축을 위한 선언' 에 서명한 2백여명은 레이건과 다른 생각이다.

한반도 안에서의 소모적 군비경쟁은 미국이 얻은 것과 같은 패권을 승리자에게 갖다주지도 않는다.

서로 다른 형태의 경제난이 엄습한 남북한이 이 위기를 냉전논리 극복의 계기로 삼지 않는다면 함께 불행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元준위의 신화적 병무비리를 보며 한국에서 군 (軍) 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경제가 정치논리에 희생당한다고들 말하지만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보면 정치가 병무논리 (?)에 먹히는 꼴이다.

동해안 잠수함사건때 복무규율문제가 제기됐지만 이런 비리풍토 위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맹자는 "소인이 한가로이 있으면 착하지 못한 짓을 한다 (小人閑居爲不善)" 고 했다. 한국군은 한가로운 소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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