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에세이]'동균'이 '대니얼'로 바뀐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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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교민들이 내미는 명함의 '제임스 김' 이니 '헨리 강' 이니 하는 이름이 못마땅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한국 성명을 유지하며 몇 년 살다 보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각종 공공.민사 서류를 작성할 때 이름이 잘못 기재돼 정정해야 하는가 하면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이름을 기억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유엔본부 출입증을 만들 때 담당직원이 '퉁앙일보 김통쿤' 으로 오기한 것이 한 예다.

외신기자클럽의 한 관계자는 내 이름이 어렵다며 쩔쩔매다 그냥 미스터 킴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름을 막 부르는 사이가 돼야 쉽게 친해지고 그래야 취재협조를 얻기도 편한데…. 비미국적인 이름들은 확실히 미국인들에게 골칫거리인 모양이다.

생소한 알파벳 배열에 복모음이라도 몇 개 들어 있으면 짜증스런 반응까지 나타낸다.

하기야 이들만 나무랄 일도 아니다.

얼마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출제' 한 문제지만 중국인 Ruofei Qiu, 베트남인 Giam Nghe, 나이지리아인 Chukwunweike Oduh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사람이 있을까. 정답은 로페이 추, 욤 니, 추쿠느웨이케이 오듀다.

미국 사람들이 이렇게 읽기도, 부르기도 어려운 이름들을 애용해줄 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대인관계에 거리감이 생기고, 결국 손해는 소수계인 이들에게 돌아간다.

뉴욕일원 민사법원에 접수된 개명신청 건수의 절반이 이민자들이 낸 것이라고 한다.

1백50~5백달러의 비용부담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니 그 절박감을 짐작할 만하다. 대세에 발맞춰 얼마전부터 대니얼 (Daniel) 이라는 미국 이름을 병행해 사용하고 있다.

아는 교민이 작명해 준 것인데, 이후로는 확실히 미국인들과의 접촉이 간편해졌다.

그러자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녀석도 맘에 든다며 자기 이름으로 하겠다고 떼를 썼다.

그 애 (선욱) 역시 '썬왁' '써누크' 로 묘하게 불리던 터라 결국 대니얼 주니어로 타협을 봤다.

뉴욕=김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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