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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판문점 가는 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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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극작가 박조열 (朴祚烈) 은 실향민이다. 그의 작품속엔 실향민이 보는 분단 현실이 들어있다.

데뷔작 '관광지대' 는 만우절에 열린 가상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를 해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의제 (議題) 는 남파 간첩과 '월북' 황소의 교환. 유엔대표 매카시는 북측이 간첩 남파사실을 인정하고 몰래 끌고간 황소를 돌려주면 체포된 간첩을 송환하겠다고 제안한다.

이에 대해 북한대표 괴공산은 간첩은 남측의 조작이며, 황소는 낙원을 찾아 북으로 왔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괴공산은 간첩이 자신의 사촌임을 알고는 유엔측 제의를 수락한다. 휴전 후 쌍방이 합의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이를 지켜본 주인공 한남북 (韓南北) .그는 전쟁 전 자신의 옛 집터인 판문점을 지키는 경비병이다. 전쟁중 아버지는 공산군에 학살당하고 어머니는 미군기 폭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남매는 남북으로 '분배' 됐다.

한남북은 언젠가 누님과 함께 판문점을 관광지대로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판문점을 돌려받는 소송을 준비중이다. 그는 기자들에게 '판문점 명도 (明渡) 소송' 을 준비하는 자신을 대서특필해 달라고 부탁한다.

휴전회담은 51년 7월 개성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중립지대로 설정된 회담장소가 양측의 공방으로 안전을 위협받자 그해 10월 판문점으로 옮겼다.

당시 판문점은 초가집 4채가 있던 '널문' 이란 한촌 (閑村)에 불과했다. 53년 7월27일 휴전협정 조인 후 판문점은 세계 전쟁사상 가장 긴 휴전을 관리하는 역사적 장소이자, 분단 현실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잡았다.

정주영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訪北)' 이 마침내 실현된다. 鄭회장은 오는 16일 동생.아들 등 7명과 함께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들어간다.

1차분으로 트럭 50대에 소 5백마리를 싣고 간다. 실향민인 鄭회장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농사꾼이었던 선친을 기억해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이와 함께 오랜 꿈인 금강산 개발계획도 추진할 계획이다. 鄭회장의 이번 역사적 이벤트에 들어가는 비용이 무려 1백37억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상징성을 고려하면 많은 돈도 아니다. 특히 실향민 입장에선 생전에 고향을 찾아갈 날이 한걸음 앞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이제 판문점 가는 길은 갈 수 없는 먼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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