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신기자들 눈에 비친 이상한 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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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한국 국회가 국제적 망신거리가 됐다. 어제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외신기자회견을 보면 외국인의 눈에 이해 안 될 비상식적인 일들이 한국 정치권에서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시켜 준다. 국민이 뽑아놓은 국회의원들이 국회는 닫아놓고 길거리에서 공방만 벌이고 있는 모습에 외신기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는 “국회에 등원하려면 사전 정리가 필요하다는데 어떤 정리가 필요한가. 정리가 안 되면 계속 등원을 미룰 거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는 “민주당은 국회 밖에서 논의한 뒤 등원한다고 하는데 먼저 국회법을 고치고 나서 해야 할 일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너무나 상식적인 질문이다. 정 대표는 궁색하게 원론적인 답변만 하다 “민주당의 행동이 불법은 아니다” “특수한 사정이라는 점 이해해 달라” “이해하기가 복잡한 상황이어서 이 정도로 답변을 마치겠다”며 피해갔다.

민주적 제도를 운영하는 데는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점을 만들어 가는 것이 최선이다. 다수결은 차선일 뿐이다. 국회법도 대부분 여야 간 합의로 처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합의로 처리하려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법과 규칙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정 대표가 외신기자들에게 “특정 정당이 입법을 방해하거나 무리하게 지연시킬 경우 처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한 ‘직권상정’도 그런 규정이다. 임시국회도 국회법 제5조 2항에는 짝수 월 1일마다 소집하도록 돼 있다. 이 법대로라면 지난 1일 국회를 열었어야 한다.

정 대표는 또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소수파가 꼭 반대해야 할 일이 있을 땐 필리버스터를 통해 의사를 지연시키기도 하고 자기 의견을 반영할 통로도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일리가 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 소수파는 나름대로 주장을 펴고 일정 부분 저항할 수 있는 합법적 수단을 갖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일도 국회 안에 들어가 제도적인 개선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지 ‘특수한 사정’ 운운하면서 장외투쟁을 벌이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BBC 기자는 “민주당은 현 정부의 모든 정책을 반대하고, 국회 개원을 하지 않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적으로 옳게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정 대표는 “1년7개월 동안 국정을 운영했는데 경제 문제, 복지 문제 등 민주당의 기대에 못 미친다”며 “대통령이 더 잘해 달라는 촉구”라고 했다. 그런 문제 제기라면 국회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자기 할 일은 하지 않고, 정부만 나무라서는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을 야당이 떠안아야 할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은 23일 친박연대·무소속과 연대해 6월 임시국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키로 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무리한 요구 조건을 접고 국회소집에 응한다면 단독국회는 피할 수 있다. 민주당이 요구하는 특검이나 국정조사는 모두 국회를 열어 논의해야 할 문제다. 어제의 외신회견은 한국 야당이 좁은 우물 안에 있음을 웅변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