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우먼]패션계 '대모' 디자이너 진태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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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4월30일, 국내 경기불황으로 개최여부조차 불투명했던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 (SFAA) 의 정기컬렉션이 사흘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쳤을 때 디자이너 진태옥 (陳泰玉.64.사진) 씨는 누구보다 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해외에서 1천5백달러에 팔리는 제 옷도 원단값만 따지면 5천원도 안될 만큼 고부가가치 산업이에요. 패션산업이 발전하려면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표할 무대가 끊겨선 안됩니다."

SFAA의 산파역을 맡았던 陳씨인만큼 열정이 남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 국내 패션계에서 내노라하는 정상급디자이너들이 거의 망라돼 있어 자부심도 대단하다.

회원들 대부분이 그의 '승인' 아래 들어와 그와 같은 교회를 다닐 만큼 陳씨를 중심으로 강한 결속력을 보여, 패션계에선 '진태옥 사단' 이란 말까지 나돌 정도. 그런 陳씨의 '카리스마' 에 반발한 젊은 디자이너 그룹들이 새로운 컬렉션을 여는 등 잡음도 적지 않지만 그가 뿔뿔이 흩어져 있던 디자이너들을 결속시켜 9년째 SFAA컬렉션을 끌어 온 공은 아무도 부인못한다.

함경도원산 태생의 陳씨는 고교졸업이 학력의 전부. 대학 낙방 후 수년간 방황하다 결혼, 첫아이가 돌을 지나서야 패션공부를 시작했다.

"전교학생회장을 맡았던 학창시절 기억이라든가, 어렸을 때부터 신익희씨 등 부친 친지인 거물급 정치인들께 받아온 영향이 컸나봐요. 어느날 갑자기 '평범한 주부로 남긴 싫다' 는 생각이 들더군요. "

65년에 달랑 7벌의 옷으로 이대앞에서 출발, 곧 명동에 '프랑소와즈' 문패를 내걸었던 그는 10년도 채 못돼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디자이너의 반열에 서게 됐다.

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유니폼과 아시아나 항공의 승무원복도 모두 그의 작품. 패션계의 한 관계자는 "그가 국내에서만 머물렀다면 원로대접 밖에 못 받았을 것" 이라며, "해외무대진출을 통해 터득해오는 그의 선진감각이 후진들로 하여금 그를 여전히 주목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고 말한다.

70년대 초 어렵게 오른 유럽과 미국 여행길에서 고급기성복에 대한 필요성을 깨달은 陳씨는 곧바로 기성복으로 전환, 80년대 뉴욕, 93년 파리로 진출했다.

그 결과 95년 프랑스 최고의 패션전문지 '쥬르날 뒤 텍스틸' 에서 '바이어가 뽑은 세계디자이너' 에 한국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5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요즘 올가을 파리컬렉션에 올릴 작품 구상에 바쁜 陳씨는 '해외에 과잉투자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 는 일부 비판에 단호하게 말한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서는 안됩니다.

한국 디자이너의 위상을 높이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해요. 고가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그런 자존심 때문이구요. "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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