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사회의 막말, 위험수위 넘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토론, 집회, 인터넷 광장에 등장하는 말이 저급(低級)으로 치닫고 있다. 세련된 풍자나 위트, 절제 있는 비판 같은 고(高)품격 언어는 기대조차 할 수 없다. 다만 한국어와 한국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 예의는 있어야 하는데, 최근 이것마저 실종되고 있다. 더욱이 일부의 일탈이 아니라 ‘전반적 풍토’로 비화되는 조짐마저 보여 매우 우려된다.

대표적인 게 국가원수에 대한 욕설이다. 어느 만화가는 원주시 홍보지에 ‘이명박 XX놈, 이명박 개○○’라는 문구를 교묘히 숨겨놓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차려진 대한문 인근엔 ‘학살정권 독재정권 살인마 ○○○은 물러가라’는 검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생명 문제를 함부로 언급하는 것도 큰 문제다. 어느 보수인사의 팬클럽 회장은 “김대중씨도 노 전 대통령처럼 자살하라”고 홈페이지에 썼다.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과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이렇게 욕설·협박을 퍼붓는 공동체는 병든 사회다. 특히 민주주의 발전을 좀먹는 악균(惡菌)의 서식지가 될 게 자명하다. ‘다른 의견의 인정’이 민주주의 원칙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입에는 ‘민주’와 ‘인권’을 달고 다니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에 대해선 형언할 수 없는 언어폭력을 가하는 일부 세력의 행태는 정말 개탄스럽다. 오죽했으면 광고주 협박 세력을 재판했던 판사가 “욕설과 저주가 시민운동이냐”고 절규했겠는가.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입시교육에 빼앗긴 예절교육, 제어장치가 부실한 인터넷 공간, 시청률에 정신을 빼앗긴 막장 드라마, 폭력·욕설이 난무하는 정치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원인 분석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다. 품위 있는 말과 행동을 위한 일대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때라고 본다. 말의 수준이 사회의 수준이다. 비판은 모양새가 건전해야 치유력을 갖는다. 자극과 자극이 부닥쳐 더 심한 자극으로 내달으면 정작 논지(論旨)는 사라지고 갈등의 골만 파인다. 언어의 건전한 치유력이 사라지면 공동체의 병만 깊어지고 피해는 모두의 몫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