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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소송서 이긴 세입자, 경매부쳐도 돈받기 막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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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법 체계가 잘못돼 전세금 반환청구소송에서 이겼더라도 집주인이 계속 버틸 경우 전세금을 못받는 일이 벌어질 수 있어 수요자들의 주의가 요망된다.

집주인이 소송에 졌는데도 계속 전세금을 내주지 않을 경우 경매를 통해 전세금을 받는 길이 있지만 현행 민사소송법 (491조2항 집행개시의 요건)에 세입자가 집을 비어주어야만 경매신청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집을 비워주면 사실상 전세권을 인정받는 대항력은 물론 소액 전세금에 대한 우선변제권마저 사라져 경매에 들어가면 도리어 전세금을 떼이는 결과가 생긴다.

살던 집에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면 설령 1순위 배당자격이 있다 하더라도 대항력이 없어져 다른 채권을 해결하고 돈이 남을 경우 세입자에 배당돼 전세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근저당 등 물권이 설정돼 있지 않다 해도 다른 일반 채권자와 함께 배당을 받게 돼 역시 전세금을 전액 돌려받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전세금 반환청구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경매를 통해 전세금을 돌려받은 경우가 거의 없어 이 문제가 별로 부각되지 않았지만 현재 이 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어 앞으로 이 문제는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서울지법 이영구판사는 "이론상으로는 경매신청전에 집을 비워주어야 하지만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상실 등의 문제가 있는 게 사실" 이라면서 "법원내부에서도 임차인이 나중에 배당을 받으면 집을 비워주겠다는 의사만으로 경매처분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고 말했다.

실제 소송과정에서 임차인이 집을 비우지 않은 상태에서 경매신청해도 된다고 법원이 결정하면 문제될게 없다는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따라서 약자가 되레 손해를 보도록 돼 있는 현행 법 체계를 감안, 세입자가 나중 집이 낙찰돼 전세금을 받을 경우 집을 비워주겠다는 의사결정을 하면 세입자가 그대로 살면서 경매신청을 할 수 있도록 법원이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원이 집을 비워야 경매신청이 가능하다고 결정할 경우 적잖은 파장이 우려된다. 이 때는 전세금 반환청구소송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로지 주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법원이 세입자가 집을 비워주지 않고도 경매신청할 수 있다고 결정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법원경매물이 홍수를 이뤄 경매기간이 3~4개월로 종전보다 거의 배로 늘었고 유찰도 많아 그만큼 전세금 회수기간이 길어졌다.

게다가 부동산 경기침체로 법원경매 낙찰률도 곤두박질쳐 최우선 순위 근저당권자에 앞서 확정일자를 받아 놓았더라도 낙찰가격이 전세금보다 적은 경우가 많다.

이런 가운데 서울지법이 지난 5일 전세금 감액청구권을 인정, 주인과 임차인의 합의를 근거로 계약기간중 전세금을 인하하라는 민사조정을 내려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정사건의 집주인처럼 감액에 동의할 주인이 그다지 많지 않고 이때는 결국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전세금 반환 또는 감액의 키는 결국 집주인에 있는 만큼 집주인과 사이좋게 협상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손용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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