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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후계설은 힐러리 발언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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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금 온 세계는 북한 문제로 들썩거리고 있다.

그런데 핵심 이슈인 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가 이번에는 최상위 이슈로부터 밀려났다. 대신 '김정운'이 그 자리를 잡았다.

북한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전세계 여론은 순식간에 실제 핵 문제 보다는 더 큰 핵 문제가 폭발할 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기 시작했다. 관심은 체제붕괴의 핵으로 작용될 지도 모르는 후계 문제로 전격 옮아갔다.

북한은 지금 무척 곤혹스러울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당황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할 것이다. 왜?

북한이 이 시점에 김정운 후계설을 흘린 것은 세계여론이 북핵 문제를 뒤로 하고 후계설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북핵 문제에 더욱 관심을 집중시켜서 미국과 핵협상을 빨리 끝내기 위한 대미 전략적 차원에서 꺼내든 카드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북한은 어떤 계기로 후계설을 흘린 걸까?

그 이유는 이렇다. 북한은 지난 4월 5일 장거리 위성 로켓 시험발사와 2차 핵실험을 강행해 미국과 일본열도를 위협하고, 서해에서 중단거리 해안포를 발사해 전 방위적으로 남한을 위협했다. 그러나 미국과 주변국들의 대응은 북한이 의도한 방향대로 따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북한의 의도는 미국을 핵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런데 미국과 한국은 오히려 더 큰 대결의 카드를 갖고 다가갔다. 북한은 대결국면을 조성하여 대화를 하기 위한 시동을 걸었지만, 한미 양국은 동맹강화란 이름하에 대화를 거부했다. 그리고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더 큰 응징과 보복을 하겠다고 맞섰다.

바로 그 시점에 북한 후계설이 서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후계자의 이름도 제시되지 않고 공식적인 발표도 없었다.

단지 김정일 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이 "3남 김정운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확인해 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김정남의 말과 행동에는 항상 복선(伏線)이 깔려 있다. 그래서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 그의 일언일행 (一言一行)은 모두 철저히 평양의 지시를 받고 이행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북쪽으로부터 흘러나온 김정운 후계설은 모두 간접화법이고 은유적, 비유적 표현이 전부다. 북측은 김정운이 후계자라는 말을 단 한번도 공식적으로 한 적이 없다. 단지 누가 보더라도 김정운이 후계자가 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정도의 추측과 심증을 가질 수 있도록 대외적인 선전 전술을 펼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후계설은 김정운을 후계자로 본격 옹립하기 위한 차원이라기보다는 미국의 관심을 끌어 들이기 위한 대미전략 차원에서 동원된 카드라는 점에 무게를 두고 싶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관심을 북한으로 끌어 들이기 위한 대미 외교전술적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일련의 후계설은 지난 2월 19일 클린턴 국무장관의 북한 후계구도에 관한 발언과 일치한다. 그리고 북한이 현재 펼치고 있는 전방위적 군사 무력시위도 클린턴 장관의 발언에 근거를 둔 대미전략인 것이다.

클린턴 장관은 국무장관에 취임한 직후 첫 순방지로 일본, 인도네시아, 한국, 중국 등 아시아 4개국을 순회 방문했다.

그런데 2월 19일 자카르타발 서울행 비행기 내에서 “북한의 지도부 상황이 불투명하다”면서 “미국은 북한이 조만간 후계문제를 둘러싼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는 매우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 미국 정부는 후계자가 되기 위한 내부 권력투쟁이 진행되고 북한 지도체제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북한과 인근 국가의 긴장이 고조될 수 있을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지금 북한이 대남 무력도발로 남북관계를 최악의 국면으로 끌고 가는 이유가 어떤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좀 더 나가 보자. 클린턴 장관의 발언에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 북한 지도부의 변화가 핵무기 해체와 관련한 논의의 진전을 더디게 하고 있다. 누가 김정일 위원장의 뒤를 이을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안 할 때, 북한 핵문제에 대한 전략을 신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한 부분이다.

그리고 “북한의 후계자 문제가 6자회담의 걸림돌”이라며 “북한이 후계자를 정하기 위한 암중모색 과정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쯤 되었으면 지금의 북한이 왜 장거리 로켓 위성 발사에 이어 2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미국 국적의 여기자 두 명을 인질로 잡았으며, 이것도 모자라 영변 핵시설에서 약 70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으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운반했는지, 그리고 최근들어 평양 산음동 미사일 연구소에서 무수단리 시험장으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옮기고 있는지 그 궁금증이 풀려 간다.

여기서 더 나아가 2차 북핵실험에 대한 유엔결의 1874호에 맞서 우라늄 농축 선언, 3차 핵실험 강행 움직임, 영변 핵시설 폐연료봉 재처리작업 착수 등 최악의 대미 위협카드를 뽑아 들게 되었을까. 북한의 후계설은 바로 이런 문제와 연동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이 지금 펼치고 있는 전방위적인 대미항전과 대남위협은 지난 2월 클린턴 국무장관이 우려를 표명했던 발언 그대로를 근거로 삼아 군사적 액션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가장 걱정하고 우려스럽게 생각한 부분이 어디에 있는 가를 클린턴 장관의 발언을 통해서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관심을 끌어 들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대남 군사적 위협과 시위를 극대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클린턴 장관의 발언을 통해서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만 미국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핵협상 테이블로 끌어 들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었던 것이다.

북측은 클린턴이 26살의 김정운에게로 권력이 이양되는 과정에서 북한정치가 극도의 내부혼란을 맞아 핵무기가 안정적으로 통제 관리되지 않을 가능성과 군부 강경파들이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다음 북한 핵무기가 군부의 통제 하에 빠지게 되면 최악의 불확실 상태에 놓이게 될 지도 모른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북한 스스로 후계설을 유포하여 북한이 후계구도 과정에서 정치 불안을 맞게 되면 핵무기 통제도 불확실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신호를 미국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김정운의 후계설은 바로 이런 과정에서 북한의 대미 전략차원에서 돌출 된 것이지, 후계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본질적 계획 하에서 나온 문제로는 보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북한의 핵문제는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파키스탄의 핵문제만큼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적 우선순위에 올라 있지 않다.

아프카니스탄은 지금 탈레반들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전국토의 70%를 장악해 들어가고 있다. 탈레반 세력이 아프카니스탄을 탈환하게 되면 그 다음 목표는 파키스탄이다. 탈레반들은 파키스탄의 핵무기를 자신들의 수중에 집어넣어 대미핵공격에 나설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미국은 바로 이 점을 최악의 상황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정치 안정화를 이루려 노력하고 있다.

북한 역시 후계구도 문제를 들고 나와 자신들의 정치 불안정성을 연출하여 핵 통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극대화시키는 대미 전략카드를 뽑아 들고 있다.

북한이 지금 대미, 대남, 대일 무력시위를 전 방위적으로 펼치고 있는 것도 대미 관심끌기 차원에서 펼친 선군외교로서 미국과의 핵협상을 빨리 끝내기 위한 전략이지 김정운의 후계체제를 안정화 시키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 북한이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다고 본다.

만일 지금의 무력시위를 통한 긴장 조성이 김정운의 후계체제를 공고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북한의 핵무기는 체제보호용이지 외교적 협상용은 아닌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핵 협상은 물건너 간 것이다. 북한이 이렇게 어리석은 오판에 기초한 대미전략을 노출할 나라는 아니라고 본다.

북한은 지금 클린턴의 발언에 기초하여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차원에서 후계설을 흘렸다. 하지만, 지금 미국과 주변국가들의 관심은 온통 김정운에게로 집중되고 있다. 김정운이 핵과 미사일을 덮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후계설 유포로 게(핵문제)도 잃고 구럭(미사일문제)도 잃게 되는 거대한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북한에서 후계설을 유포하면 할 수록 북한의 정치체제를 바라 보는 외부 시각은 체제붕괴적인 관점으로 접근해 들어 갈 것이다. 이는 곧 김정일 위원장의 체제도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생각하고 당분간 북한과 아무런 협상도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북한의 다음 카드가 궁금해 진다.

장성민


필자 장성민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서 북한정치를 연구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세인트존스대학 국제문제연구소에서 '현대 영국과 국제문제'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미국 듀크대 국제문제연구소에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연구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초대 국정상황실장과 16대 민주당 의원을 지냈다. 의원시절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로 활약중이다. 저서와 역서로 '전쟁과 평화: 김정일 이후, 북한 어디로 가는가' '전환기 한반도의 딜레마와 선택"9·11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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